기 간 : 2009년 6월 30일- 7월 5일 

 

장 소 : 수원성지 뽈리화랑 제3전시실

 

 

 

뽈리화랑 뽈리신부 유물전

 

         제3전시실 뽈리신부 유물전 

 

        제3전시실 뽈리신부 유물전  

 

         심뽈리신부 상체모습
         뽈리신부님께서 빈틈없으면서도 인자한 긴수염의 얼굴 표정에서 양떼를 사랑으로 돌보는 사목자로서, 끝까지 피신하지 않고 
성체조배로 성체를 굳건히 지키시다가 순교하신 주님의 사제로서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잘 
드러난다.
 

 

         심뽈리신부가 신학공부를 하신 파리외방전교회 
   
     해외 박해지에서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파리외방전교회 신학원이다. 
         심뽈리신부님은 1901년 이곳 신학교에 입학하여 기숙사생활과 신학공부를 하셨다.  

 

         파리외방전교회 성당외부 
         심뽈리신부가 신학생때 미사를 봉헌하고 성체조배하시며 기도하시던 성당의 외부모습  

 

        파리외방전교회 성당내부      
        
심뽈리신부가 신학생때 미사를 봉헌하고 성체조배하시며 기도하시던 성당의 내부모습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출발” 그림  
(Charles Louis de Fredy de Coubertin : 1822-1908) 1868년에 그린 유화. 선교사들은 제대 앞에 열을 지어 섰고, 신자들은 제대 앞으로 나와 선교사들의 발에 입을 맞추고 이들을 포옹 하였다. 이 예식 동안에 파리외방전교회의 오르간 연주자였던 샤를르 구노(Charles Gounod)가 작곡한 ‘선교사들의 출발을 위한 노래’가 울려퍼졌다. 맨 위의 오른쪽부터 성 유스또 랑페르 드 브르뜨니에르(Just Ranfer de Bretenieres), 성 헨리꼬 도리(Henri Dorie), 성 루도비꼬 볼리외(Louis Beaulieu), 성 루까 위엥(Luc Huin)이다. 뽈리신부도 이와 유사한 선교사출발 환송식에 참여하여 당시 조선에 파견 되었으리라 추측된다.  

 

         파리외방전교회의 팔각정과 종(鐘)
         각 선교지로 파견된 뽈리신부를 포함하여 모든 선교사들은 이 곳 팔각정에서 동료들과 작별한 후 
마차를 타고 보르도항으로 
가서 임지로 떠나는 배를 탔다고 한다 

 

        뽈리신부 유물전시실  

 

   심뽈리신부 좌상 
심뽈리신부님의 좌상은 영적 전쟁에서의 대장군다운 용맹한 풍채와 위용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심뽈리신부 좌상 (교우들과 함께) 
         젊은 보좌신부와 복사단으로 보이는 어린이들과 노인복사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구수원성당 앞에서 찍은 사진 

 

        심뽈리신부가 사용하시던  대성합, 소성합(1),  소성합(2),   성광,    십자가,   성작  (왼쪽부터)

 

         심뽈리신부가 사용하시던 성구

 

                                  1995년 북수동성당 장덕호 주임신부님과 교우들이 심뽈리신부님 고향방문 사진
뽈리신부 고향 야누스성당 내부 - 심신부님이 어렸을 때부터 다니시던 비비에교구 바누스성당 내부.  
뽈리신부 고향 마을 사람들 - 바누스마을에서 만난 고향마을 사람들  이들 대부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양사람을 만나 보았다고 한다.
뽈리신부 고향 마을 어린이들 - 뽈리신부고향인 비비에교구 바누스마을에서 만난 천진난만한  어린이들. 
뽈리신부 고향 민속춤 - 장덕호주임신부님과 교우들의 방문을 환영하며 비비에교구장께서 환영행사로 공연토록 한 고향마을 민속춤.  

 

심뽈리신부가 건립한 수원성당 옆면 
심뽈리신부님께서 1932년 일제강점기에 수원의 거룩한 순교를 기념하고 미신을 타파하기 위한 성당을 목표로 당시  공세리성당을 설계하신 파리외방전교회 드비즈신부님을 모셔다가 설계를 하였고, 중국인 건축기술자들이 기초와 시공을 맡았고, 당시 본당과 공소의 교우들과 함께 벽돌을 지어 나르며 팔부자집터에 건립한 수원 최초의 고딕식건축이며 근대식 건축의 효시이다. 

 

제3전시실 뽈리신부 유물전    

 

 심뽈리신부가 건립한 수원성당 정면    
수원성당 앞쪽 양편에 팔부자집 기와집이 보이고 그 사이로 철문으로 된 성당 대문이 보이는데, 
성당대문 바깥쪽에 서계신 심뽈리신부님과 그 왼편 으로 교우 두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심뽈리신부 입상  
1945년 조국해방과함께 진갑잔치 기념으로 구수원성당 입구에서 찍으신 사진.  전통한복 차림으로 전통모자를 쓰시고 
흰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곰방대를 드셨으며, 고무신을 신은 모습에서 한민족의 복음 토착화를 이루시려던 열정이 드러난다.

 

심뽈리신부건립 수원성당에 걸렸던 종   
일제강점기에 무기제작용으로 일본순사에게 하바트면 빼앗길 뻔 했던 구수원성당의 종.   
1932년 심신부님의 고향사람이 프랑스에서 직접 제작하여 보내준 종으로 현재 북수동성당 종탑에 걸려있다. 
 

 

주보 성미카엘 대천사상     
뽈리신부님께서 수원지방의 미신을 타파하기 위해 마귀를 물리치는 성미카엘대천사를 주보로 정하시고  성 미카엘상을 제작하셨다.

 

심뽈리신부 진갑잔치 (전신자와 함께) 
1945년 10월 27일 조국해방과함께 맞이한 심뽈리신부님의 진갑기념 잔치에 본당교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  

 

심뽈리신부께서 창설하신 명도회의 기 <사진> 

 

심뽈리신부가 연행된 성당터 바깥쪽 (현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          
1948년 8월 천안성당으로 부임후 사목하셨던 천안성당터. 이곳에서 성체를 굳게 지키시며 성체조배하시다가 괴뢰군에게 납치 되어 
1950년 9월 대전에서 순교하셨다.
 지금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가 건물이 지어져 수도자들이 수도생활을 하고 있다.  

 

심뽈리신부가 연행된 구천안성당터 안쪽 마당
심뽈리신부님이 연행되었던 천안성당은 헐려서 오룡동성당으로 옮겨갔고, 현재는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 건물이 들어서 있다.  

 

심뽈리신부가 연행된 구천안성당의 순교 현양비   
한국순교복자수녀회 화단에 세워져 있는 심신부님의 순교 현양비 

 

심뽈리신부 북수동성당 기념비    
북수동성당에 세워진 심뽈리데시데리도 신부 기념비  

 

 파리외방전교회의 한국순교성인 순교비
파리외방전교회 팔각정 왼쪽으로 세워져 있는 한국순교성인 순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