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위 수원순교자 자료전시회

* 전시기간: 2013년10월19일(토)~ 상시전시


* 전시실내역

 ◎ 제1전시실: 조선시대 순교자 약전가 유물

◎ 제2전시실: 조선시대 형구

 ◎ 제3전시실: 근대시대 순교자 1위 약전과 유물


† 18위 수원순교자 소개: 현재 2차 시복대상자 추진중


* 사진촬영: 2013년10월30일 오후5시25분~ 오후6시15분(야간촬영)                         


* 본당설정 90주년 기념으로 열린 전시전 이니다.(본당의날 행사: 2013.10.27일)


Daum블로그-꽃향기머무는집http://blog.daum.net/amormusicyjh/13709216/


                    ◎ 설명글 보충은 청소년분과위원장(정스테파노)님이 자료를 보내주셨습니다.


 



01. 전시회가 열리고있는 수원성지내 뽈리화랑


 



02. 수원성지 북수동성당


◎ 제1전시실: 조선시대 순교자 약전가 유물



03. 뽈리화랑 전시실



04. 조선시대 순교자 약전가 유물 전시실



05. 조선시대 순교자 약전가 유물 북쪽방향 101-1


 



06. 22) 심뽈리신부가 연행된 성당터 바깥쪽 (현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


1948년 8월 천안성당으로 부임후 사목하셨던 천안성당터. 이곳에서 성체를 굳게 지키시며 성체조배하시다가


인민군에게 납치되어 1950년 9월 대전에서 순교하셨다. 지금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가 건물이 지어져


수도자들이 수도생활을 하고 있다.


 


 



07. 23) 심뽈리신부가 연행된 구천안성당터 안쪽 마당


심뽈리신부님이 연행되었던 천안성당은 헐려서 오룡동성당으로 옮겨갔고,


현재는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 건물이 들어서 있다.




08. 24) 심뽈리신부가 연행된 구천안성당의 순교 현양비


한국순교복자수녀회 화단에 세워져 있는 심신부님의 순교 현양비


 



09. 25) 심뽈리신부 북수동성당 기념비


북수동성당에 세워진 심뽈리데시데리도 신부 기념비


 



10. 심응영 뽈리데시데라도 신부 약전


 



 11. 24) 심뽈리신부가 연행된 구천안성당의 순교 현양비


한국순교복자수녀회 화단에 세워져 있는 심신부님의 순교 현양비


 



 12. 조선시대 순교자 약전가 유물 전시 서쪽방향 101-2


 



 13. 1) 심뽈리신부 상체모습


뽈리신부님께서 빈틈없으면서도 인자한 긴수염의 얼굴 표정에서 양떼를 사랑으로 돌보는 사목자로서, 끝까지


피신하지 않고 성체조배로 성체를 굳건히 지키시다가 순교하신 주님의 사제로서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잘 드러난다.


 



 14. 17) 파리외방전교회 성당외부


심뽈리신부가 신학생때 미사를 봉헌하고 성체조배하시며 기도하시던 성당의 외부모습


 



 15. 18) 파리외방전교회 성당내부


심뽈리신부가 신학생때 미사를 봉헌하고 성체조배하시며 기도하시던 성당의 내부모습


 



16. 19) 파리외방전교회의 팔각정과 종


각 선교지로 파견된 뽈리신부를 포함하여 모든 선교사들은 이 곳 팔각정에서 동료들과 작별한 후


마차를 타고 보르도항으로 가서 임지로 떠나는 배를 탔다고 한다.


 



17. 16) 심뽈리신부가 신학공부를 하신 파리외방전교회


해외 박해지에서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파리외방전교회 신학원이다. 심뽈리신부님은


1901년 이곳 신학교에 입학하여 기숙사생활과 신학공부를 하셨다.


 



18. 20)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출발”(Le depart des missionnaires )그림


이 그림은 꾸베르뗑(Charles Louis de Fredy de Coubertin : 1822-1908)이 1868년에 그린 유화이다.


선교사들은 제대 앞에 열을 지어 섰고, 신자들은 제대 앞으로 나와 선교사들의 발에 입을 맞추고 이들을 포옹하였다.


이 예식 동안에 파리외방전교회의 오르간 연주자였던 샤를르 구노(Charles Gounod)가 작곡한


‘선교사들의 출발을 위한 노래’(Chant pour le depart des missionnaires)가 울려퍼졌다.


맨 위의 오른쪽부터 성 유스또 랑페르 드 브르뜨니에르(Just Ranfer de Bretenieres),


성 헨리꼬 도리(Henri Dorie), 성 루도비꼬 볼리외(Louis Beaulieu), 성 루까 위엥(Luc Huin)이다.


뽈리신부도 이와 유사한 선교사출발 환송식에 참여하여 당시 조선에 파견되었으리라 추측된다.


 



 



19.20. 조선시대 순교자 약전가 유물 남쪽방향 101-3


 



21. 3) 심뽈리신부 좌상


심뽈리신부님(뽈리데시데라도1884-1950, 프랑스남부 비비에태생, 625때 순교. 수원성당주임역임 1931-1948)과


화가나혜석(1896~1948 수원화성 신풍동 45번지 태생, 무연고병동에서 사망)은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해방을 맞이하면서 수원화성에서 같은 때에 같은 곳에서 각자 다른 무대에서 생활했지만 같은 시대 같은 곳에서


 한민족의 수난과 아픔을 겪은 동시대인들로서 모두 비운의 주검을 맞이하였다.


심뽈리신부님의 좌상은 영적 전쟁에서의 대장군다운 용맹한 풍채와 위용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22. 4) 심뽈리신부 좌상(교우들과 함께)


젊은 보좌신부와 복사단으로 보이는 어린이들과 노인복사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구수원성당 앞에서 찍은 사진


 



23. 화면좌측14) 심뽈리신부가 건립한 수원성당 옆면/ 화면우측 6) 7) 8) 9) 10) 


심뽈리신부님께서 1932년 일제강점기에 수원의 거룩한 순교를 기념하고 미신을 타파하기 위한 성당을 목표로


당시 공세리성당을 설계하신 파리외방전교회 드비즈신부님을 모셔다가 설계를 하였고, 중국인 건축기술자들이


기초와 시공을 맡았고, 당시 본당과 공소의 교우들과함께 벽돌을 지어 나르며 팔부자집터에 건립한  


수원 최초의 고딕식건축이며 근대식 건축의 효시이다.


 


6) 심뽈리신부 고향마을


프랑스 남부 비비에교구 바누스. 이곳이 심뽈리신부님이 출생하여 자라고 대자연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삭바느질을 하시던 홀어머니 밑에서 외방선교사의 꿈을 키운 고향마을이다.


 


7) 심뽈리신부 고향 야누스성당 내부


심신부님이 어렸을 때부터 다니시던 비비에교구 바누스성당 내부


 


8) 심뽈리신부 고향마을사람들(1995년)


1995년 4월 북수동성당에서 심신부님 고향방문때 고향인 비비에교구 바누스마을에서 만난 고향마을 사람들의 모습.


이들 대부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양사람(북수동신자)을 처음 만나 보았다고 한다.


 


9) 심뽈리신부 고향마을어린이들(1005년)


1995년 4월 북수동성당에서 심신부님 고향방문때 고향인 비비에교구 바누스마을에서 만난 천진난만한 어린이들


 


10) 심뽈리신부 고향민속춤


1995년 북수동성당 장덕호주임신부님과 교우들이 심뽈리신부님 고향방문하였을 때


비비에교구장께서 환송행사로 공연토록 한 뽈리신부님의 고향마을 민속춤이다.


 



24. 31) 심뽈리신부가 사용하시던 성작


 



25. 30) 심뽈리신부가 사용하시던 십자가


 



26, 29) 심뽈리신부가 사용하시던 성광


 



27. 27) 심뽈리신부가 사용하시던 소성합(1)


 


 



28. 26) 심뽈리신부가 사용하시던 대성합


 


 



29. 28) 심뽈리신부가 사용하시던 소성합(2)


 


 



30. 조선시대 순교자 약전가 유물 동쪽방향 101-4


 



31. 2) 심뽈리신부 입상


1945년 조국해방과함께 진갑잔치 기념으로 구수원성당 입구에서 찍으신 사진. 전통한복 차림으로 전통모자를 쓰시고


흰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곰방대를 드셨으며, 고무신을 신은 모습에서 한민족의 복음 토착화를 이루시려던 열정이 드러난다.


 



32. 15) 심뽈리신부가 건립한 수원성당 정면


수원성당 앞쪽 양편에 팔부자집 기와집이 보이고 그 사이로 철문으로 된 성당 대문이 보이는데,


성당대문 바깥쪽에 서계신 심뽈리신부님과 그 왼편으로 교우 두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33. 12) 심뽈리신부건립 수원성당에 걸렸던 종


일제강점기에 무기제작용으로 일본순사에게 하바트면 빼앗길 뻔 했던 구수원성당의 종.


1932년 심신부님의 고향사람이 프랑스에서 직접 제작하여 보내준 종이다. 현재 북수동성당 종탑에 걸려있다.


 



34. 5) 심뽈리신부 진갑잔치(전신자와함께)


1045년 10월 27일 조국해방과함께 맞이한 심뽈리신부님의 진갑기념 잔치에 본당교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


 



35. 13) 심뽈리신부께서 창설하신 명도회의 기


심뽈리신부님께서 1931년 수원본당에 부임하자마자 전교사업을 목표로 부인신자들로 구성된 명도회를 설립하시고


명도회기를 직접 디자인하여 만드신 작품으로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당시 일반적으로 쓰이던 뽀뿌링 재료로 만들어져 있다.


 


◎ 제2전시실: 조선시대 형구



36. 뽈리화랑 제2전시실


 



 



37.38. 제2전시실: 조선시대 형구 전시실


 



39. 조선시대 형구 북쪽방향 102-1


 



40. 순교화


 



 



41.42. 1)형구명: 태/ 규격: 대두경(2分7厘), 소두경(1分7厘), 길이(3尺5寸)


사용법: 가벼운 죄가 있을 때, 때리는 도구. 형벌의 가중에 따라 구분


           2)형구명: 곤봉- 사용법: 죄인 나포용과 난장을 통한 살해용 병기


3)형구명: 육모방망이- 사용법: 관아 포졸들의 휴대용 병기이며 경호용이나 죄인이나 범인을 타격, 포획할 때 사용


 




 



43.44.1)형구명: 주장(朱杖)/ 규격: 길이 8척/ 사용법: 죄인을 가운데 두고 사방에서 마구잡이로 때리는 고문형인 난장에 사용


강도사건에 사용하며 발바닥 부위 타격이나 처벌,   


심문의 주릿대로도 사용시위의 질서나 민간인을 경계하는 경호에도 사용                           


 




 



45.46. 조선시대 형구 서쪽방향 102-2


 



47. 수원화성 천주교신자 심문 및 형벌 절차


 




48.49. 1)형구명: 신장 - 대신장 - 중/ 신장 - 소사용법: 큰 형장으로 치는 것 70대 이상 100대까지


 



               50. 형구명: 철삭/  규격: 길이 1장/ 사용법: 사형죄를 범한 죄인의 손에 채우는 수갑


천으로 두손을 묶어 수갑을 채운 후 복부에 다시 압박하여 결박


 



 



51.52. 형구명: 대들보형틀/ 사용법:  대들보를 허공에 매달아 떨어트리며 머리부분을 타격하여 치사케할 때 사용.


20명에서 25명 사이의 단체 사형집행도구


 



53. 조선시대 형구 남쪽방향 102-3


 



54.  조선시대 형구 남쪽방향 102-3-1       순교화, 돌형구, 고형(固刑)틀- 십자형틀


 


            


55. 순교화


 



 



56.57. 고형(固刑)틀- 십자형틀 


 



 



58.59. 돌형구- 점점 좁아지는 돌 가운데 구멍으로 목을 감은 밧줄을 잡아 당겨 고통을 주는 고문 도구


 



60. 조선시대 형구 남쪽방향 102-3-2    (중앙)순교화, (화면좌측) 형구명: 가- 피향목도(彼向木刀),


(화면우측) 형구명: 착고(着錮)/ 규격: 길이 4미터, 폭 16센티/ 사용법: 긴 나무 수갑으로서


좌우에 여러 죄인의 발을 교차로 집어 넣어 빠지지 않게 자물쇠에 채워 투옥




61. 순교화


 



62. 형구명: 가- 피향목도(彼向木刀)/ 사용법: 가의 일종으로서 두사람을 마주보게 하여 한 칼 안에서 두 사람의 목을 고정시킴


 



63. 형구명: 추(수갑)/ 규격: 두께1촌 길이1척 6촌/ 사용법: 수갑


 



64. 조선시대 형구 동쪽방향 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