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초기 천주교회사는 곧 순교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혹한 박해를 받았고, 이에 따른 많은 순교자를 배출했다. 이 가운데 1839년
기해년부터 1846년 병오년 사이의 순교자 79위의 시복식(諡福式)이 1925년 7월 5일 거행되었고, 1866년 병인박해 당시 흥선대원군의
박해로 순교한 24위의 시복식이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되었다. 이로써 한국의 천주교회는 모두 103위의 순교복자(殉敎福者)를 지니게
되었다.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방한한 교황 파울루스(바오로) 2세가 여의도 광장에서 한국 순교복자 103위
시성식(諡聖式)을 거행함으로써 이들은 복자에서 성인의 품위로 오르게 되었다. 103위의 구성을 보면, 김대건 신부(성인이 된 유일한 한국인
성직자)와 평신도 92명, 파리 외방전교회소속 선교사 10명(주교 3명, 신부 7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성식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배경을
살펴보면, 1983년 3월 한국주교단은 교황청에 기적심사관면청원서를 제출했고 교황청은 시성을 허락했다. 성인의 반열(班列) 절차가 매우
까다로움에도 불구하고 교황청이 승인한 이유는 한국 천주교회가 '신앙의 기적'이라고 일컫는 평신도 중심의 자생적 교회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로마 이외의 지역에서 시성식을 행한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로써 한국의 천주교회는 천주교 성인의 10%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이탈리아·프랑스·베트남에 뒤이은 4대 성인교회로 급성장하게 되었다
시성식이 행해지면 성인들은 교회의 성인명부에 기록되며, 성인을 기념하는 성무일도(聖務日禱:성직자 기도서)와 미사경문이 작성되고, 그의
이름이 세례명으로 사용된다. 또한 가톨릭 교회의 모든 신자들로부터 경의의 대상이 된다.
1984년 7월 2일 103위 성인이 탄생함에 따라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공문을 통해 한국성인의 공경에 대한 지침을
발표했다. 지침내용은 첫째, 9월 6일 한국순교복자 대축일을 없애고 9월 20일을 한국성인 대축일로 기념하며, 각 교구에서는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며, 둘째, 복자성월(福者聖月) 9월은 순교자성월로 지낼 것 등이다. 1984년 10월 14일 로마 교황청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103위 시성 로마 경축대회가 열렸다. 이듬해 3월 12일 교황은 한국순교성인축일을 세계공용 로마 축일표에 수록하고 기념하도록 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