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장 소

내 용

비고

서울대교구

광희문
(시구문)

박해의 칼바람은 서울과 수원, 용인 등 인근 지역의 교우들을 도성 안으로 끌고 들어왔고 이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가혹한 고문 속에서 배교를 강요당하다가 끝내 이를 거부함으로써 가차 없이 치명의 길을 가야 했다. 도성 안에서 참수 치명한 순교자들의 시신은 짐짝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이곳에 내다 버려졌던 것이다

서울시 중구 신당 2동
406-4

당고개

 

1840년 1월 31일과 2월 1일 양일에 걸쳐 10명의 남녀 교우들이 순교.
박종원, 홍병주, 홍영주 형제, 손소벽, 이경이, 이인덕, 권진이, 이문우, 최영이 등 9명이 성인품에 올랐다.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1가 187-1

새남터

1801년부터 1866년까지 무려 10명의 외국인 사제를 포함한 11명의 목자가 이곳에서 거룩한 순교의 피를 흘린다.

서울시 용산구 이촌
2동 199-1 

서소문

103위 순교 성인들 중 44명의 성인 성녀와 함께 수많은 순교자들을 탄생시킨 한국 최대의 순교지가 바로 서소문 밖 네거리이다.

서울시 중구 의주로 2가 서소문 공원 내 

왜고개

순교 성인들의 시신이 머물다 간 곳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
3가 1

절두산

맨 처음 순교자는 이의송(프란치스코) 일가족으로, 그 해 10월 22일 부인 김이쁜(마리아), 아들 이붕익(베드로)과 함께 참수됐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렇듯 이름과 행적을 알 수 있는 22명과 단지 이름만 알려진 2명 그리고 이름조차 알 수 5명을 합해 29명 외에는 아무런 기록도 전해지지 않는 무명 순교자들이다.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96-1 

부산교구

언양 성당

오한우(베드로)가 1790년에 관헌에게 체포되어 백지사(白紙死)를 당한곳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 422 

울산
병영 장대

1860년 경신박해 때와 병인박해 중인 1868년, 두 차례의 큰 박해 때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경신박해 때 백지사형(白紙死刑)으로 순교한 오치문, 병인박해 때 경주 감옥에 갇혔던 허인백(야고보), 김종륜(루카), 이양등(베드로) 회장 등이 이곳에서 군문효수를 당했다.

울산시 중구 남외동 569 

대전교구

갈매못

1866년 병인박해 때 다블뤼 안 주교, 오메트르 신부, 위앵 민 신부, 황석두 루카, 장주기 회장 등 다섯 명과 5백여 명의 이름 모를 교우들이 순교한 곳이다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영보리 375-2 

해미 읍성

1790년대부터 1880년대에 이르는 100년간,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대량 처형한 형장이다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16 

홍주성

홍성 순교자는 참수형보다는 교수형이 많고 생매장된 순교자도 있다. 많은 순교자들이 성 안에서 처형된 후 그 시체는 성 밖으로 내던져졌다.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고암리 552-11

황새바위

공주 황새 바위에서 순교한 교우들 중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들만 해도 무려 248명에 이른다, 손자선 토마스 성인과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내포 지방의 사도' 이존창 루도비코도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6-1 

광주대교구

나주
무학당

광주대교구 내에서는 유일하게 순교 터가 있었던 곳이다. 강영원(바오로), 유치성(안드레아), 유문보(바오로) 그들이 처형당한 곳으로 그외에도 많은 천주교인들이 옥사 및 처형 당했다.

나주시 남외동 128
나주 초등학교 교정 

수원교구

남한산성

1791년 신해(辛亥), 1801년 신유(辛酉), 1839년 기해(己亥), 1866년 병인(丙寅) 네 차례에 걸쳐 한덕운, 김덕심, 정은 등을 위시하여 70명 이상(실제 순교자 2-3백 명으로 추산) 순교한 곳임."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446 

북수동 성당   

현재까지 신앙의 증거지로 밝혀진 곳은 '화성행궁', '화청관 이아', '중영', '동남각루', '남암문', '형옥', '팔달문 밖 장터'와 '장안문 밖 장터'이며 그 외에도 '종로 사거리', '화령전과 화서문 사이 사형터', '동장대'도 순교지로 추정되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북수동 316

죽산

죽산 관아에서 심문을 받고 끌려가 순교한 처형 장소가 '잊은 터'이다.기록에만 25명의 순교자가 순교한 곳으로 전해지는 순교의 터.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죽림리 703-6 

인천교구

갑곶

성연순(成連順)과 원윤철(元允哲)이 1866년 10월 순무영(巡撫營)에 넘겨져 양화진에서 효수형을 받았다. 그리고 1868년에는 최인서(崔仁瑞, 요한), 장치선(張致善), 박순집(朴順集)의 형 박 서방, 50세 된 조참봉의 부친 등이 병인양요와 연루되어 강화에서 순교하였으며, 1870년에는 통진 출신 권 바오로가 20세의 나이로 강화에서 교수형을 받기도 했다. 또한 1871년 신미양요(申未洋擾) 때는 미국 군함에 다녀왔다는 죄로 처형당한 강화에 살던 천주교 신자 우윤집(禹允集), 최순복(崔順福), 박상손(朴尙孫) 등이 갑곶진두에서 순교하였다.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 1044-2

 

진무영

1866년 병인년부터 시작한 박해로 강화도에서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으나 현재 알려진 순교자로는 1868년 5월 22일 진무영(鎭撫營)에서 최인서(崔仁瑞, 요한, 애오개 회장, 59세), 장치선(張致善, 張周基 요셉 성인의 조카, 59세), 박서방(朴順集 베드로의 형), 조서방(趙參奉의 부친, 50여세) 등이다.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 5리 643
강화 성당 내 

춘천교구

강릉부 관아

병인박해 때 많은 신자들이 강릉 칠사당과 임영관에서 심문을 받고 순교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강원도 강릉시 용강동
58-1 

원주교구

강원감영
(선화당)

박해가 일자 많은 천주교인들이 이곳에 잡혀와 갖은 고초를 겪은 후 처형되었다.

강원도 원주시 일산동
54-2 

의정부교구

양주 관아

양주 관아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용인과 이 지역에서 체포된 신자들이 순교한 곳으로 홍성원 아우구스티노, 김윤호 요한, 권 마르타, 김 마리아, 박 서방 등 5명이 순교하였다고 “치명일기(致命日記)”는 전하고 있다.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507 

대구대교구

관덕정

경상도 전역의 천주교 신자들이 대구로 이송되어 와서 감영 옥에서 옥사하거나 형장에서 순교를 하게 된 것이다. 관덕정과 대구 인근에서 순교한 교우의 수는 지금까지 모두 25명, 감영 옥에서 옥사한 순교자는 30명으로 추산된다.

대구시 중구 남산 2동
938-19 

전주교구

서천교

성 조윤호(요셉, 1848-1866년)가 1866년 12월 23일 치명한 곳이다

전주시 완산구 서완산동 1가 351-1 

여산 동헌

“치명일기”(致命日記) 등에 기록된 순교자만도 25명에 이르는 여산은 특히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가혹한 처형 방법으로 유명하다. 여산 동헌에 잡혀 온 신자들은 참수, 교수는 물론 백지사형(白紙死刑)으로도 죽임을 당했다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 445-2 

전주 숲정이

1802년 1월 31일(음력 1801년 12월 28일) 유항검의 처 신희, 제수 이육희, 자부 이순이(루갈다), 조카 유중성(마태오) 등 유항검의 가족이 처음 참수되면서부터 순교자의 피가 마르지 않았다.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
1034-13 

초록바위

성 남종삼(南鍾) 요한의 14세 된 아들 명희(明熙)와 순교자 홍봉주(洪鳳周) 토마스의 아들이 수장된 곳이다.

전주시 완산구 동완산동 산 1-9 

풍남문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 그리고 호남의 사도 유항검과 초대 전주 지방 교회의 지도급 인물들이 처형된 곳이다.

전주시 완산구 전동 83-4 

제주교구

 김기량 순교
현양비

‘제주의 사도’이자 최초의 순교자인 김기량의 행적을 밝혀줄 사료가 2001년에 대량 발굴되었다. 1867년 1월(음력 1966년 12월)로 당시 김기량의 나이는 51세였다.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72-32 

제주 관덕정

1901년에 발생한 제주도 신축교안(辛丑敎案)에서 대략 300-350명 정도의 교우들이 살해된 것으로 추산된다

제주시 삼도 2동 9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