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4년 영조가 즉위하고 1776년 정조즉위 후 1800년 정조가 죽을 때까지를 조선후기의 르네상스 시기라할 수 있다.

영조와 정조는 탕평책 등을 펼쳐서 조선시대의 여러가지 폐단을 억제하고 나라 발전에 노력하며 백성을 위해
새로운 세금징수 제도를 만들었는데 그중 1가지가 '대동법'이다.

17C 초 ~ 18C 초 대동법을 시행하기이전에 공납제 라는 것이 있었는데.

공납은 각지방의 특산물을 세금으로 바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특산물 중 일부는 운송과 보관에 매우 어려움이 따랐다.

예를 들어 광주의 무등산수박을 한양으로 운송하는데. 매우 더운 여름날에는 수박이 상한다거나.

아니면 무거운 수박을 들고 산을 넘기가 불편했다.

또 국가에서도 이런 특산물을 처리하기가 매우 곤란하였다.

 

그래서 이런 공납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방납인(특산물을 대신 납품해주는 사람)이 나타나고

이런 방납인이 중간에서 많은 수수료(?)를 챙겨서 농민들의 생활이 매우 악화 되었다.

 

영조는 이원익의 주장에 따라서 대동법을 실시하고

대동법은 각지방의 특산물 대신 쌀, 베, 돈 을 토지 면적당 받고(1결당 12두) 그 돈으로 필요한 특산물을 개인적으로 사들이었다.

방납인의 반발이 심했지만 100여 년간에 걸쳐서 모든 지방에 대동법을 실시하게 된다.

 

그때 받은 돈으로 특산물을 대량으로 사들이는데 이러한 일을 해주는 사람들을 공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공인들의 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서 공인들이 사들이는 물품을 만드는 사람들도 활동이 활발해지게 되고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자 농민들 중 일부도 상공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상공업이란 상업과 공업이 합쳐진 말인데 상업은 서로 필요한 물품을 사고 팔고. 공업은 물품 등을 만드는 것이다.


조선초기에는 이러한 상공업이 발달하지 않아서 화폐경제가 그리 발달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러한 화폐대신 물물교환이나 쌀 베 등을 화폐대용으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상공업이 발달하게 됨에 따라서 여러 가지 생산품이 대량으로 거래되고 또 대량으로 소비되었다.

 

이러한 생산품의 활발한 유통을 위해 돈 ,즉 화폐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상평통보라는 화폐가 생겨났다.

 

또한 이러한 상인들 이 나타나게 됨에 따라서 이동을 자주하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여각(상인들을 대상으로 숙박업, 금융업을 하는 기관)이
나타나고 현재 5일장이라고 부르는 장시가 전국 곳곳에 생겨났다.

 

상업이 발달하며 자연스럽게 경제를 운영하는 보부상이 나타났다.

당시 도로와 육지운송수단이 발달하지 못해서 수로를 통한 운송을 하기 위해 포구가 변화하게 되었고

예전에는 그냥 세금(쌀)이나 공납물을 운송하는 기지였던 곳이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상업의 중심지로 변모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외 무역도 활발하게 되었고 일본과 청나라로 수입수출이 활발해지게 되었다.

 

청나라와는 개시 , 후시를 통해서 대표적으로 인삼, 종이, 무명,은 등을 수출하고 비단 약재 문방구 등을 수입해왔고.
일본과는 왜관개시를 통해서 은, 구리, 황, 후추 등을 수입하고 , 인삼 쌀, 무명과 청나라에서 온 수입품을 수출하였다.

 

물론 임진왜란 등으로 일본과 관계가 악화되었지만 17세기이후에 다시 두 나라와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회복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무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상인들이 거대한 자본을 쌓기도 하였다.

 

결론적으로 영조와 정조 시대는 서민경제가 활성화되었고 외국과 문물 교환이 왕성하면서 외국의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과정에서
천주교(서학)를 알게되었고 자연스럽게 천주교가 국내로 전파되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