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의 눈물

관리자 2016.05.10 19:13 조회 수 : 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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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의 눈물

혹시 살면서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따스한 위로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이 몇 번이나 있으신지요? 아니면 하느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언제나 사랑으로 돌보아 주고 계셨다는 사실을 확신한 적은 또 언제 있으셨는지요? 변하기 쉬운 인간적인 위로와 사랑이 아니라, 오로지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위로와 사랑을 믿을 때 거기서 나오는 영적인 힘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가 될 경우가 있습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분 중에 무척이나 긍정적인 자매님이 계십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 자매님 정도의 험한 시련을 겪게 되면 대인 관계에 있어 위축되거나, 심할 경우에는 우울증을 동반할 정도로 힘든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하지만 그 자매님은 그 큰 시련의 시간 앞에서도 언제나 밝고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곤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하는 일에 일손이 필요해서 그 자매님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자매님은 단순 노동의 작업을 얼마나 정성을 다해서 끝내 주시던지! 며칠을 해야 할 작업을 하루 만에 다 끝낸 후 기쁨에 가득 찬 나는 자매님과 차를 나누면서 감사함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다 평소 자매님에게 묻고 싶었던 것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여쭈었습니다.

“고마우신 자매님, 사실 자매님 삶을 생각하면 힘겹고 지칠 일이 많을 텐데 평소에 밝게, 씩씩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는지 궁금한 적이 있었어요. 혹시 무슨 계기가 있으셨어요?”

두 손으로 따스한 컵을 감싸 안으시며 차를 한 모금씩 마시던 자매님은 환하게 웃으며,

“그렇죠. 궁금하시죠? 음, 그럼 제가 말씀드릴게요. 사실은 지금까지 ‘누군지 모르는 어느 신부님’ 때문에 이렇게 잘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크게 보면, 궁극적으로는 하느님 때문에 이렇게 노력하며 살고 있답니다.”

“누군지 모르는 어느 신부님이라뇨?”

“사실 10년 전의 내 삶을 돌이켜보면, 힘든 일이 연속해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어나 인간적인 불행이라는 불행은 다 겪고 있었어요. 정말이지, 그때는 정신을 못 차리게 힘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날마다 하느님께 원망도 하고,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도 하고. 그러면서 왜 이렇게 나 혼자만 겪기 힘든 시련을 허락하셨는지 분노하고 증오하고 미워하고 원망했어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픈 시간을 겪고 있었죠. 냉담 중이던 어느 날 우연히 혼자서 성당에 가게 됐고, 나도 모르게 성체 앞에 가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어요. 그런데 아마도 미사 전이었는지,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성당 안에 있는 고해소에 빨간 불이 들어오더라고요. 마치 나더러 지금 고해소에 들어오라는 듯이!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곳에 들어가서, 고해성사를 보는데 또다시 눈물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울면서, 세상에 대한 분노, 사람에 대한 미움과 증오, 가족들에 대한 원망, 내 삶에 대한 두려움 등 내 안에 있는 죄책감을 죄다 쏟아 냈어요.”

“그러셨구나. 그러면서 마음속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겠어요.”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성사를 보는데, 고해소 칸 넘어 신부님이 계신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가만히 들어보니, 글쎄 신부님이 내 고백을 듣고 우시는 거예요. 순간 화들짝 놀랐어요. 신부님이 우시는 것에.”

“고해소에 계신 신부님이 울어요?”

“그런데 신부님, 고해소 안에 계신 신부님의 우는 소리를 듣는데 그 소리가 신부님이 아닌 하느님이 함께 울어 주시는 것으로 들렸어요. 하느님이 지금까지 내 고백을 다 듣고, 내 삶의 아픔을 다 아시는 듯 나를 위로해 주시며, 나와 함께 울어주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튼 그 날 어떻게 고해소를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놀라운 경험이었답니다. 내 삶을 온전히 다 아시는 사랑과 위로의 하느님. 내 상처와 절망과 고통을 다 아시는 하느님! 한동안 냉담하다가 고해소를 찾아온 나를 보시고, 온통 분노와 증오투성이의 나를, 미움과 불안, 두려움만 가득 찬 나를 보시고 하느님은 나보다 더 아파하시며, 나를 위해 당신 먼저 이렇게 울어주셨구나 하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계속 눈물이 났어요.”

자매님의 이야기에 나도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자매님도 촉촉이 젖은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는 나도 모르게 이렇게 기도하게 되더라고요.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느님 울지 마세요. 하느님 저 이제 잘살게요. 하느님도 이제 울지 마세요!’ 그렇게 하루 꼬박을 울었더니, 마음속으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따스함이 느껴지는 거예요.”

나는 먹먹한 가슴으로 가만히 천장만 바라보았습니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자매님은,

“그래요, 신부님. 그 사건 이후로 내 삶이 조금씩 바뀌어가더군요. 그 후로 시간만 있으면 성체 앞에 가서 가만히 있기만 해요. 뭐 그다지 기도할 줄도 모르고, 성체 조배하는 방법도 잘 모르지만 나를 위해 울어주시는 하느님을 만난 이상, 그냥 그분 앞에 가만히 있어요. 그저 하느님, 그분이 내 마음을 다 아실 거라는 생각으로 가만히 있으면, 마음이 따스해져요. 그 힘으로,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살았어요. 아파하는 나를 위해 울어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하느님을 만났는데 이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살자고. 울보 하느님이 이토록 사랑 가득하고, 자비로운 분이신데 그분의 사랑을 믿고 다시 살아가자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이렇게 10년이 흘렀네요. 그런데 그 신부님, 저 지금도 궁금해요. 그 신부님이 누군지. 정말 알고 싶어요.”

그렇습니다. 살면서 진심을 다해 하느님을 만나고자 한다면, 그 언젠가, 진심이 통하는 그 어느 순간에 하느님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우리 마음 안으로 손수 들어오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오신 하느님은 우리 마음 안에 이렇게 속삭이십니다. ‘나는 너를 언제나 사랑하고 있단다.’ 이것은 진리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분명 자비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매님이 지금까지 찾는 ‘누군지 모르는 어느 신부님’은 아마 진짜로 예수님이었을 겁니다. 고해소에 소리 없이 찾아오셔서 인간의 아픔을 함께하고 싶어 하는 예수님 말입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을 저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