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허협 (바오로 1795-1840)
당고개에서 불과 이틀 사이에 10명의 증거자들이 목이 잘리어 그들의 순교를 완수하는 동안 감옥에서도 한명의 증거자가 매를
맞고 숨을 거두었다. 그가 바로 허협 바오로이다.
허협이라고도 하고 허염이라고도 하는데 아마도 허협이 맞는 것같다. 어쨌든 그는 훈련도감 병정으로 있으면서 온 집안식구와 함께 천주교 계명을 열심히 지켰다.
기해년 박해 때 포졸에게 잡히게 되었는데, 잡힌 시기는 분명치 않으나 아마도 그해 7월 상순경이 아닌가 생각된다.
포청에 끌려간 허바오로는 포장에게 배교를 강요당하고 주리를 틀리고, 꼬챙이로 찔리고 치도곤 70대를 맞는 등 혹형을 당하였으나 일평생 교를 버리지 않겠다고 언명하였다.
그랬건만 몇 주일이 지난 뒤 유혹을 입어 배교하였다. 그러나 이 잘못을 밤한 후 곧 그것을 뉘우치고 그 즉시 재판곤을 찾아가서, "나는 죄를 지었으나 지금은 그걸 뉘우칩니다. 입으로는 배교
하였으나 마음으로는 교우였고 지금도 교우입니다"하고 말하였다.
재판관이 그를 가두게 하니 옥사장들이 그를 괴롭히며 "말로 취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니 네가 뉘우친다는 표를 우리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대소변이 가득찬 통을 가리키며 "네가 참으로 뉘우친다면 여기 사발이 있으니 저 통에 있는 것을 퍼서 먹고 마셔라"하고말하였다.
허협은 서슴치 않고 그것을 한사발 듬뿍 퍼서 단숨에 삼켜버리고 다시 뜨려고 하닌 옥사장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그만 두어라, 그만 둬, 그렇지만 여기 십자가가 있으나 네 교를 배교하기 싫거든 십자가앞에 엎드려라" 허 바오로는 꿇어서 이마를 땅에 대고 조아리며 잠깐동안 생각없이 입으로 배반하였던 에수를 온 마음을 다해 통회하고 예배하였다.
이렇게 그의 배교 취소가 진정임을 증명하였다. 포청에 있는 수 개월동안 무려 치도곤 130대를 맞아야 했다. 결국 이 때문에 1840년 1월 30일 옥중에서 선종하니 그의 나이 45세였다.
이렇게 인자하신 천주께서는 허 바오로에게 사죄와 더불어 순교의 은총까지도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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