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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허계임 막달레나  

 

 

 

 

 

 

    

 

성인 성녀 허계임 막달레나  

영문명

 
축일 9월 20일  활동년도 1839.9.22 순교 
신분 부인  지역 한국 


성녀 허계임(막달레나 1772-1839)

허계임 막달레나는 그의 며느리 선 막달레나의 증언에 의하며1772년 음력 11월 3일 용인에서 출생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 외교인이었으나, 과천의 봉천리에서 외교인이던 성주 이씨와 결혼한 후, 시누이 되는 이매임(데레사)에게서 비로소 천주교에 대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아들이 없으므로 늘 "나는 열심히 믿다가 죽는 길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나 후에 양자를 들였고 선 막달레나를 며느리로 맞아 들였다. 남편이 수계하지 못하게 온갖 방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허계임은 그의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한번은 남편이 이른 아침부터 그에게 폭행을 가하고 나서 외출하였다. 허계임은 집안식구를 모아 놓고, "오늘 아침 너의 아버지가 내게 그렇게 난폭하게 굴었으니 저녁에 돌아오면 아마 더할 것이다. 천주를 위해 죽기전에 이렇게 잔치를 베푸는 것이 아마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고 하면서 잔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과연 저녁에 남편이 돌아오자 크게 화가 나서 아내를 괴롭히며 그의 목에 칼을 대고 협박했다.
허계임은 결국 "이후는 하지 않겠습니다"고 굴복함으로써 간신히 죽음을 면했다. 그 후 허계임은 이 장면을 회상할 때에는 그때 배교한 것을 개탄하였고 순교의 기회를 놓친것을 후회하며 슬피 울었다.

그래서 그후로도 계속 남편으로부터 박해를 받았으나 더 이상 굽히지 않고 열심히 수계하게 되었다. 1838년 남편이 임종하게 되자, 허계임은 남편을 개종시키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나 허사가 되었다.

허계임은 판공 때가 되면 시누이와 함께 상경, 딸의 집에 머무르면서 성사를 받고 돌아가곤 했다. 기해년 봄에도 마침 성사를 보러 상경했을 때, 박해가 크게 일어나서 교우들이 많이 잡혀갔다.
허계임은 박해를 피할 수 없음을 짐작하고 위주 치명하기로 결심한 끝에 시누이 두 딸과 같이 있던 교우 등 6명이 4월 11일 모두가 포졸앞에 나아가 자헌 하기에 이르렀다.

9월 25일 "내일 네 어머니가 형장으로 나갈 것이다"라는 소식을 전해들은 허계임의 아들은 그날 밤으로 급히 상경하여 어머니의 순교하는 광경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는데, 첫번 희광이가 칼을 쳤으나 목이 떨어지지 않자, 다음 희광이가 다시 한번 칼을 치니 허계임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때는 1839년 9월 26일 서소문 밖이었으니 그의 나이 67세였다. 9월 26일에 처형된 순교자들이 문초당한 이야기는 몇 분만 제하고는 상세하고 알려지고 있어 그들의 마음의 위대함과 신념의 확고함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으나 기록이 가장 적게 남아 있는 것이 허계임에 대해서다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다만 혹형을 참아받아 그의 두 딸 이영희와 이정희보다 못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것뿐이다.

주재용 신부는 성훈자녀 보이복녀라고 간단히 표현했는데 이제는 그보다 위인 성훈자녀 보이성녀가되었다.

우리의 경건한 호기심은 좀 더 자세히 알았으면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우리의 존경을 받고 우리의 흠앙을 일으키기에 족하지 아니한가?

두 순교자의 어머니로서 순교자가 되었으니 어떤 다른 영광이 그 이마를 더 찬란히 꾸밀 수가 있겠으며 그의 신앙을 더 높이 현양하고 그의 모성을 온전하게 성화할 수 있는 천주의 강복이 어디 또 있겠는가? 허계임 막달레나 성녀의 유해는 절두산 기념 관에 안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