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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정화경 안드레아        

 

 

 

 

 

 

    

 

성인 성 정화경 안드레아 

영문명

 
축일 9월 20일  활동년도 1840.1.23 순교 
신분 회장  지역 한국 


성 정화경 (안드레아 1806-1839)


정화경 안드레아는 1806년 충청도 정산고을 넉넉한 교우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열심히 천주교를 믿었다. 본성이 순진했을 뿐더러너무나 고지식해서 두번이나 유다스의 간악한 말에 넘어가 교회에 큰 불행을 초래한 일이었다.

가산도 부유하였고 신앙생활도 소홀히 하지않았다. 그러나 많은 친구와 외교인 친지들로 인하여 수계하는데 큰 지장이 있어서 마침내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이때 여러 곳으로 이사를 다니다가 수원양간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회장일을 맡아 보며 판공때가 되면 자기집을 공소집으로 제공하였다.

한편 서울을 자주 왕래하며 교회일을 힘 자라는 데까지 도왔다. 기해년 박해가 일어나자 와경은 매일같이 교우집을 방문하고 "모두가 주명입니다. 잡히면 위주치명하십시오. 이같은 좋은 기회를 놓치면 언제도 이러한 기회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이렇게 순교를 격려하였는데 전력을 다하였다.

앵베르 주교가 시골로 내려와 잠시 피신하려 하므로 화경은 자기집 근처에 안전한 피신처를 마련하였다. 주교는 이 곳으로 내려와 아무도 모르게 피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유다스 김여상이 교우 수 명을 앞세우고 또 포졸을 거느리고 정화경을 찾아왔다. 처음에는 속아넘어가지 않았으나 결국하는 수없이 혼자 가서 주교의 피난처를 알아보겠다고 대답하였 다.

그러나 김여상이가, "나만 따라가겠다"고 말하였으나 화경 안드레아는 "죽어도 못가겠다"고 거절하자 여상이 "함께 갔다가 도중에서 떨어지겠다"고 하며 온갖 방법으로 화경을 유인하였다.

화경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같이 가다가 만일 여상이 멈추지 않으면 나도 안가면 되지"이렇게 마음을 먹고 함께 떠났다.

과연 여상이가 도중에서 멈추었다. 화경은 혼자서 주교의 은신처로 가서 찾아온 까닭을 이야기 했더니 주교는 "너는 마귀에 속았다"고 말하고 나서 즉시 행장을 차리고 여상과 포졸앞에 자수하였다.

같이 따라오려는 화경이에게 주교는 따라오는 것을 엄히 금하고 집에 돌아가라고 명하였다. 포졸들도 그를 잡지 않고 돌아가게 하였다. 그는 집에 돌아와서 자기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며 말할 수 없는 비통속에서 밤새 통곡하였다.

그 후 포졸들이 또 내려와 정 안드레아를 만나 체포하였다. 관가에 이르러 화경은 또 한번 속아 마침내 종교의 자유가 온 줄로 믿고 교우 수 명을 고발하였다. 포교들은 그를 이용하여 모방, 샤스탕 두 신부도 찾아내려 했으나 이번에는 마침내 정화경도 천주교 원수들의 모략을 간파하여 지금까지도 속아왔지만 잘못하면 이후에도 또 속으리라는 것을 깨닫고 도망하여 전교 신부들을 비밀리 찾아보고 위험이 신변에 박두했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주고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고 박해자들을 찾아가 자수할 뜻을 밝혔다.
그러나 신부들이 그것을 말렸으므로 몸을 피하려 하였으나 끝내는 붙잡혀 갇히는 몸이 되었다.

포장은 그에게 배교하기를 명하였다. 화경은 우둔하기는 하나 확고한 신앙을 가진 교우였으므로 포장이 재촉하는 것을 단연 거절하였다. 그리고 주리와 찌르는 형벌을 용감히 참고 받았다.

다섯 달 동안을 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조금도 마음을 굽히지 않고 위주치명하기로 결심하였다. 치도곤 1백대를 맞고도 계속하여 신앙을 지키다가 마침내 1840년 1월 23일에 목이 졸리어 순교를 완성하니 그의 나이 33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