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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정철염 카타리나         

 

 

 

 

 

 

    

 

성인 성녀 정철염 카타리나  

영문명

 
축일 9월 20일  활동년도 1846.9.20 순교 
신분 부인  지역 한국 


성녀 정철염 (가타리나 1816-1846)

정철염 가타리나는 일명 '덕이'라고도 불렀다. 수원의 교우 부모 에게서 태어났는데, 천성이 온순하고 순박한데다 총명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자라서 포천지방 수평에 사는 한 양반 김씨 집에 하인으로 들어갔는데 원래 주인이 외교인이라서 미신을 강요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첩으로 삼으려고 하므로 정철염은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수가 없어서 서울로 도망쳐 왔다. 서울에 와서는 우선 회장인 남이관의 집에서 얹혀 살았고 그 후 화계동의 김임이 데레사 집으로 이사하여 김데레사와 같이 살았다.

김데레사의 동생 김 가타리나는 언니 집에서 정철염 가타리나를 자주 만날 수 있었다고 하며, 그때 보고 들은 것을 이렇게 회상하였다.
"그는 30세 가량의 결혼하지 않은 동정녀였다. 어머니는 열심한 교우였다. 시골에서 나서 시골 양반집의 하인으로 들어갔는데 주인과부가 가타리나에게 미신행위를 명하고 배교까지 강요하였다.
그러나 정 가타리나가 조금도 복종하지 않자 주인 과부는 수없이 그에게 매질을 하고 불로 지지는 등 온갖 학대를 가하였다. 그래서 서울로 피신해 왔다."

1845년 김임이 데레사가 돛우무골 김대건 부제의 집의 가정부로 들어가게 되자, 그를 따라 김신부집에 와서 하인노릇을 하며 수계 하는데도 충실하였다.

정철염은 아주 허약하였으며, 시골 김씨댁 하인으로 있을 때 주인으로부터 매맞은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의 몸은 부어있었고 얼굴은 황색이었다. 온 몸이 성치 않아서 힘든 일은 거의 할 수 없었다.

김임이 데레사를 따라 현석문 회장이 새로 마련한 집에 피신하였다가 김데레사와 함께 잡히어 갔다. 또한 포도청에서 김데레사와 같은 날인 1846년 9월 20일에 교살되어 순교의 영광을 차지하였다. 이 때 그의 나이 30세였다. 수구문밖에 버려진 시체를 교우들이 거두어 이웃에 매장하였다.

이렇게 영광스러운 최후에도 불구하고 정철염 가타리나의 일생에는 하나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 그는 체포되기 전까지 현석문 가롤로와 동거생활을 하고 있었다. 선교사들은 전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교우들 중에서도 서로 알고 있는 이가 매우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사람의 동거생활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현석문의 첩이었다고 하며, 내연의 처라고도 하는데 정철염 가타리나가 여종신분에 불과하였으므로 내연의 부부로 보는 것이 훨씬 그럴싸한 것 같다.

어쨌든 그들은 둘 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용감히 목숨을 바침으로써 천주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을 뿐 아니라 극히 소수에게만 허락되는 순교의 탁월한 은총까지 받게 되어 성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