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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정원지 베드로         

 

 

 

 

 

 

    

 

성인 성 정원지 베드로  

영문명

 
축일 9월 20일  활동년도 1866.12.13 순교 
신분 농부  지역 한국 


성 정원지 (베드로 1845-1866)

 


정원지 베드로는 일명 '원조'라고도 불리었는데 충청도 진잠에서 태중교우로 출생하여 아버지는 일찍 순교하였고, 늙으신 어머니와
충청도 고향을 등지고 전라도 전주 부근의 수널마루에 피난해서 살다가 금구지방으로 이사했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즉 그가 잡히기 전에는 전주지방의 성지동에서 늙으신 어머니와 형, 그리고 아내와 함께 조화서 베드로 집에 셋방을 얻어 착실히 수계하며 살고 있었으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그에 대한 평판은 그리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조화서 베드로가 잡히던 12월 5일 산으로 피신하였었고 조용하던 마을의 동태를 살피는 사이 산으로 그를 잡으려고 올라온 포졸과 마주쳐서 잡히게 되니 동리 뒤 탈믄이라는 산마루였다. 그도 조화서 일행 7명과 함께 구진버리 주막에 끌려가게 되었다. 이때"천주교를 믿느냐?"하고 한 포졸이 묻자 그는 엉겁결에 "나는 그런 잘못을 저지른 죄가 없어요"하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옆에 있던 조화서가 그를 호되게 나무랐다.
"나하고 같은 집에서 사는 네가 천주교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니 이 사람들이 네 말을 믿을 수 있겠느냐? 그리고 이 교를 믿으면서도 믿지 않는다고 말을 하느냐?"
"무서워서 그렇게 말했어요." 정원지는 얼른 이렇게 대답하고는 포졸들을 향해 "저도 천주교를 믿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러자 포졸들
은 큰소리로 말했다.
"아니 이 불한당 녀석이 미쳤군 그래! 이 교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가 이제와서는 믿는다고 그러니 말이야."

이리하여 정원지도 사학죄인으로 취급되어 구진버리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고 전주 감영으로 옮겨졌으나 그가 갇힌 곳은 감옥 전면 이었다. 그 후 포졸은 그에게 물었다.
"네 교리선생은 누구냐?"
"저는 아버지 때부터 천주교인입니다. 아버지는 성교를 믿었기 때문에 공주 감사에게 죽음을 당했고 저는 어머니와 이리저리 떠돌아 다닙니다."
"네 아버지가 천주교를 믿었기 때문에 공주 감사에게서 사형을 받았다면서 그래 너까지 그 교를 믿는단 말이냐?"
"예, 저도 아버지 계신 데로 가려고 성교를 믿습니다."
"네가 그 교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 목숨을 살려주마, 그저 믿지않는다고만 말해라."
"그건 안됩니다. 저도 죽어서 아버지를 따라가고 싶습니다."
신앙 증거자 정원지의 이 같은 말을 듣고 포졸들이 말했다.
"이 놈도 저 악당과 똑같은 놈이다." 포졸들은 손과 발을 묶어 포조청 감옥에 가두었다.

정원지 동료 모두가 치명의 영광을 기뻐했지만 그는 지극한 늙은 어머니를 생각한 끝에 여러 번 눈물을 흘려 다른 교우들로부터 많은 격려를 받았고 그 뒤 다시 전과 같이 기쁨에 넘쳐 흐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천국에서 우리는 서로 만날 때가 있을 것이니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라고 가족에게 위안을 남기기도 하였다. 12월 13일 옥에 갇힌 지 이레 뒤에 그도 동료들과 함께 읍내의 서문 밖에 있는 숲정이 처형장으로 끌려갔다.

거기서 사형집행의 준비절차가 행해지는 동안 사형수들은 앉아 있게 하였다. 그러나 옥졸 하나가 술기운에 사형수들의 주위를 빙빙 돌며 선동하기 시작했다.
"하늘에 대고 모욕하는 말을 해라. 그렇게 하면 살려준다. 저 하늘보고 욕하란 말이다."
포졸들이 이 말을 여러 번 했을 때 사형수들 중에서도 나이 어린정원지가 듣고 쏘아붙였다.
"이 불한당 같으니라구. 그래 너는 아비 어미에게 악담을 하겠느냐?"
그리고는 머리를 숙였다.
"놀라운 일이군, 저사람은 죽은 것을 무서워 하지 않는군"하고 구경꾼들이 말했다. 그의 동료들은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슬픈 빛을 띠고 있지는 않았다.

"그들은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고 한 증인이 말했다. 구경꾼들의 비난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저 사악한 사람들이 완전한 천주교인들이구면, 그래서 입술을 움직이면서 하늘에 올라가기 위한 무슨 말을 외고 있구먼."

처형준비가 끝나자 감사는 사형집행관석에 자리잡더니 여섯 신앙증거자를 불러다 놓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 공자의 도는 너무 심오해서 우리가 그것을 철저하게 알고자 해도 힘이 모자란다. 내가 너희를 죽게 하는 것은 너희가 외국의 종파를 따르기 때문이다. 너희는 죽게 되지만 너희의 죽음을 아무의 죄로도 삼지 마라."
신앙증거자들은 "선고는 옳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정원지의 차례가 되자 그는 망나니에게 목들 드리웠다. 그의 머리는 숲정이에 장을 보러 온 장꾼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단칼에 떨어졌다. 이렇게 참수치명 순교의 영광을 얻으니 그의 나이 21세였다.

정원지 베드로의 시체는 그날 같이 치명한 교우들과 함께 오사현의 주선으로 순교지 근처의 용마루재에 임시로 묻혔다가 다음해 3월초 그의 형 정원집의 손에 의해 고산지방의 다리실 천호산에 옮기어 지금도 그 곳에 안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