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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김 루치아   

 

 

 

 

 

 

    

 

성녀 김 루치아 (루시아, 1817-1839)


김루시아는 서울의 성곽을 바라보며 흐르는 강변촌인 공덕에서 외인 집안의 15남매 중 막내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찌기 세상을 떠났고 그때 그의 어머니가 한 교우 로부터 성교얘기를 듣게 되었다.

어머니가 아직 주모경밖에 익히지 못했을 때의 일이다. 겨우 아홉살인 루시아가 하루는 어머니에게 "엄마, 엄마가 나를 낳았지?
그러면 엄마는 누가 낳았어?"하고 물었다.
"할머니지"하고 대답했으나 김 루시아는 인류의 원조까지 질문을 그치지 않았다. 어머니는 말이 막혀, "난 아무 것도 모른다. 내일 밤 섬 할아버지가 오실테니 물어 보아라"하고 대답하였다.

이튼날 그 할아버지에게 루시아는 천주교 도리를 듣고 배웠다.3일만에 읽는 것을 배웠고 또 3일 후엔 문답을 다 외웠다. 신부가
들어온 후에는 세례를 받았는데 정하상의 누이동생 정정혜(엘리사벳)가 대모를 섰다. 루시아는 14세 때에 이미 용모가 뛰어나고 성질이 온화하고 재주가 비상했는데 그는 이 타고난 자기 재능을 경천히 여기고 자기의 동정을 예수 그리스도께 봉헌하기로 결심하였다.

어머니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같이 지냈으나 어머니를 여윈 후에는 조그마한 유산을 팔아 빚을 청산하고 장례비에 충당하였다.
그리고는 의지할 곳이 없어 이 아우구스티노 회장집 등 여러 교우집으로 돌아다녀야 했다. 한 집에서 너무 오래 신세나 폐를 끼칠까 염려하여 이집 저집 떠돌아 다니며 얻어 먹었다.

2-3일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지낸 때도 있었다. 하루는 언니가 찾아와서 며칠씩 아무 것도 먹지 않은 것을 보고, "이 놋 요강을 팔아서 한번이라도 요기를 하도록 해라"하고 권고하였다. 그러자 루시아는 "오늘 이것을 팔아버리면 포졸들이 잡으러 올 때 그들에게 무엇을 팔아 신값을 줄 수 있겠습니까?"하고 대답하였다.
루시아가 항상 치명할 원의를 품고 있었음을 이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알 수 있다.

김 루시아도 이 영희 막달레나의 집에 모인 다른 5명의 여교우와 한가지로 자수하기에 이르렀는데 이 때 김루시아가 그 곳에 거처하고 있었는지 또는 잠깐 다니러 왔었는지는 분명하지가 않다.어쨌든 루시아는 자수할 결심을 하고 나서 올케인 황마리아에게자기의 남은 재산인 수저를 주면서 "내겐 이제 소용이 없는 것이니 마음대로 쓰세요. 그리고 올케도 잡힐 때가 되면 천주를 위해 치명할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하고 당부하였다.

이리하여 1839년 4월 11일 다른 여교우와 같이 자수한 루시아는 두손이 뒤로 결박된 채 법정에서 서서 판관과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나누었다.
"저렇게 잘 생기고 아름다운 색시가 사학을 믿다니 웬 일이냐?"
"나는 성교를 참교로 믿기 때문에 봉행합니다."
"이제라도 배교하고 네 목숨을 구하여라."
"못하겠습니다."
"곤장을 맞고 유혈이 낭자하게 되어도 배교를 못하겠느냐?"
"장하에 죽사와도 배교는 못하겠습니다."
"왜 배교를 못하는지 이유를 말해라."
"천주님은 하늘과 땅과 신과 사람을 조성하셨습니다. 당신 섭리로 만물을 다스리고 선한 사람에게 상을 주시고 악한 자를 벌하시닌 그 이유로 배교를 못하겠습니다."
"너는 누구에게서 이교를 배웠고 몇 살 때부터 믿었느냐?"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배웠습니다."
"네가 여기저기 교우집을 찾아 다니며 대접을 받았으니 그 집들을 알것이 아니냐. 어디 있는지 말하라."
"내 은인들을 해칠 수가 없고 또 성교회법에서도 금합니다."
"왜 남편이 없느냐?"
"나이 스무살이 그렇게 많은 나이가 아니니, 아직도 얼마든지 때가 있을 것이고 또 처녀 하나가 시집가고 안가는 것은 당신께서 관여
할 바가 못되옵니다."
"그래 네 말도 옳구나. 그런데 책에 가끔 영혼이란 말이 나오니 영혼이 무엇이냐?"
"영혼은 신령한 체라 육목으로는 볼 수가 없습니다."
"어디에 있느냐?"
"사람 전체에 있으며, 영혼이 육체를 움직이게 하고 생명을 주니 영혼이 떠나면 육신은 죽고 썩습니다."
"너는 죽음이 무섭지 않느냐?"
"죽기를 무서워 하고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천주를 위하여 이 생명을 버리고 다른 생명을 바랍니다."
"네가 천주님을 본 일이 있느냐?"
"그의 창조하신 업적을 보고 그의 존재를 압니다. 이 광범위한 조물들과 그들의 완벽한 질서와 상호 연결이 창조주 계심을 증명합
니다. 시골백성들이 임금님을 뵈옵지는 못하나 그가 계신 줄을 의심치 않습니다."

판관이 처녀의 지혜와 웅변에 감복되어 그의 꽃다운 나이와 아름다운 용모에 사로잡혀 그를 보존하려고 전력을 다하여 처음에는 감언이설로 달랬다가 나중에는 형벌로 그의 의지를 꺾으려 하였으나, 김 루시아는 요주부동으로 맞서 모든 문초와 질문에 달변과 변론으로 놀라게 하였다.

루시아는 안색 혼연하고 대답이 민첩하여 귀신을 접하는 것이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였다. 형조에서는 포청에 비하여 형문이 더 무서웠으나 김 루시아의 굳셈은 여전하였다. 루시아는 문답한 말을 기록하여 여러 번 교우들에게 보냈다. 또 옥중에서 굶주린 교우들을 위해 자신의 길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잘라 팔기까지 하였다.

1839년 7월 20일 서소문 밖에서 김 마르타와 같이 참수치명하니, 동정과 순교의 두 월계관을 받았다. 그때 그의 나이 22세였다.

루시아가 동료 교우에게 보낸 편지중에 아래와 같은 용맹하고 감탄할 만한 말이 적혀 있다.
"나는 지금 천주의 은혜로 형벌과 고통 가운데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결국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언제나 천주께서 나늘 부르시 려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하여 천주께 기도하고 될 수 있는대로 빨리 우리 뒤를 따르십시오. 우리는 다만 천주의부르심을 기다릴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