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이호영 베드로(1803 - 1838(36세) 회장 11월 25일 옥사
성 베드로 이호영은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난 후 어려서 입교하였는데, 부친이 대세를 받고 사망하자 모친과 누이 이소사(아가타)와 함께 서울로 이주하여 신앙생활에 열성을 다 하였다.
중국인 유방제(劉方濟) 신부에 의해 회장으로 임명되어 교회의 여러가지 일들을 성실하게 처리하였다. 1835년 2월에 한강변 무쇠막에서 누이 이 아가타와 함께 체포되어 옥고를 당하면서 갖은 형벌을 받았다. 감옥 안에서의 고통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웠다. 여러차례 혹형을 당하여 온몸이 상처 투성이고 살이 터져 피와 고름이 흐르며 몸을 움직일 수 조차 없을 정도 였는데 그 후로도 형조로 이송되어 3차의 형문을 당하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 감옥에는 악취는 물론 굶주림에 지친 이는 더러운 지푸라기를 뜯어 먹기도 하고 이까지 잡아먹었다고 한다. 성인은 포청과 형조에서 매우 고통스러운 고문을 당했지만 비명 한마디 없이 참아 내어 인내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 형조에서 내린 사형선고의 글귀중에 '사학죄인'(邪學罪人)이라는 문구를 보고, 천주교는 사학이 아니라 거룩하고 참된 종교라고 주장하면서 수결(手決)을 거부하였다.
형리는 억지로 손을 끌어다가 찍게 하였다. 4년간 감옥에 있으면서 온화한 모습을 항상 보여주면서 기도를 계속하였고, 누이와 함께 순교하기를 원하였지만, 옥에서 얻은 병으로 끝내 1838년 11월 25일 주님의 나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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