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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문우 요한       

 

 

 

 

 

 

    

 

성인 성 이문우 요한 

영문명

 
축일 9월 20일  활동년도 1840.2.1 순교 
신분 복사  지역 한국 


성 이문우(요한 1809-1840)

일명 경천이라고도 불려지는 이 문우 요한은 경기도 이천군 동산밑에 살던 양반 교우집에서 태어났으나 겨우 그의 나이 다섯 살때 부모를 여의고 의탁할 데 없는 고아가 되어 버렸다.

다행히 어느 교우의 알선으로 서울의 여교우 오바르바라가 이문우를 데려다 양자로 키웠다. 문우는 본시 수정할 마음을 먹고 있었으나 양어머니가 결혼할 것을 강력히 권하여 하는 수 없이 결혼하였다.

아내와 열심히 수계하며 자녀를 두었으나 미구에 아내와 두 자녀를 모두 잃었다. 사람들이 재혼할 것을 권해 마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선교사들이 입국을 계기로 하여 성사를 타당히 보고 문우는 더욱 열심하였다. 또한 모방 신부 곁에서 1년 이상 복사를 하면서 그의 전교생활을 도와 드리곤 하였다.

기해년 박해를 당하여 문우는 위험을 무릎쓰고 의연금을 거두어서 옥중 교우들의 생명을 도왔다. 주교와 신부는 다 시골로 피신하였으므로 그들에게 서울의 정세를 알리기 위하여 여러 번 지방을 내왕하였다. 그러나 박해는 치열해져서 주교나 신부는 물론이요, 지도급 교우들도 거의 다 잡히게 되니 문우의 신변도 매우 위험해졌다.

이문우는 피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교. 신부들의 일이며 옥중 교우들과 피신중의 교우들의 딱한 사정을 돌보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이리저리로 두루 피힌해 가며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주교와 신부를 위시하여 많은 교우들이 잇달아 순교하게 되니 문우는 7-8명의 교우와 여러 날 상의한 끝에 밤을 이용하여 순교자들의 시체를 거두어 이장하였다.

그후 문우는 시골로 피신할 결심을 하고 마지막 밤을 서울 어느 교우집에서 지내러 갔을 때, 바로 그 날(11월 11일) 밤중에 포졸들이 들이닥쳤다. 처음에 문우는 깜짝 놀라 깨어 어리둥절하였으나 곧 침착을 회복하여 말하였다.
"천주께서 특별한 은혜로 나를 부르시니 어찌 그 말씀을 따르지 않으오리오."

그리고 자기 자신이 포졸들을 먼저 재촉하여 포청으로 끌려가서 간단한 문초를 당하였다. 조금 후에 오라로 결박을 당해서 포장앞에 출두하니, 포장은 그에게 선교사의 말을 물었다. 이미 모든것이 알려진 뒤였으므로 이문우는 모든 이가 아는 사실을 이야기 하였다.

포장이 자유해방될 희망을 보여서 그의 마음을 돌리게 하려는 생각으로 "너는 가문도 훌륭하고 아직 젊었으니 문을 숭상하여 고명하게 되고 무를 닦아 명성을 날릴 수 있거느르 사도를 좇아 법을 범하고 부끄러운 죽음을 당할 위험을 무릅쓰니 어째서 그러느냐?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런 행동을 하느냐? 지금이라도 배교하기를 승낙하면, 대관께 잘 여쭈어서 네 목숨을 구해줄테니 깊이 생각해 보아라. 아무 이유도 없이 저 무식장이들 모양으로 죽고자한단 말이냐?"고 하였다.

그러나 이문우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 함은 인간의 상정이거늘 어찌 즐거운 마음으로 죽기를 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나라 법률에 복종하려면 우리의 대군대부시요, 하늘과 땅과 천사와 사람과 만물을 만드신 무상의 창조주를 배반하여야 할 것이니 죽어도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인께서 지금 말씀하신 모든 것에 대하여는 벌써 오래 전부터 깊이 생각하고 결심한 것이니 이상 더 묻지 마십시오."

포장은 그래도 치근덕거리며 달래며 음식과 술을 그에게 주게 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또한 이문우는 대답하기를, "판관께서도 국왕이 무엇을 명하시는데, 어떤 지방관원이 왕명과 반대되는 것을 명한다면 누구의 말을 받들겠습니까? 이 세상은 제왕들과 관장들이 다스리나 천주님의 명을 받들어 온 세상을 다스린 즉 그들은 천주님의 기계와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즉 왕도 천주님께 복종하여야 합니다"하였다.

갖가지 수단으로 문우를 달래 보았으나 허사이므로 판관이 분하여 도둑과 배교자들이 갇혀 있는 옥에 가두게 하였다. 한 하급관 리가 와서 그를 불러내여, "네 옷이 훌륭한 것을 보니 돈을 감추어둔 것이 분명하다. 어디 있는지 대라"하였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문우가 대답하자 곤장 20대를 때리게 한 뒤에 도로 가두었다.

불행히 배교한 약한 교우들을 보자 문우는 슬프고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불쌍한 사람들이 혹 나보다 훨씬 훌륭한 생활을 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타락하지 않았는가. 천주여 나약함을 붙들어 주소서>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 뒤로 형조에서도 포청에서와 같이 끈기있게신앙을 증거하였다.

이문우는 형조에서 음력 12월 27일자로 유가족에게 긴 편지를 써보냈는데 여기서 형조에서 문초받은 사실을 이렇게 전하였다.
<음력 10월 20일에 판관이 나를 불러내어 보통 이상으로 곤장을 때리게 했습니다. 내 힘만으로야 어떻게 그것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천주의 도우심과 성모 마리아의 천신, 성인과 우리 모든 순교자들의 전구하시는 덕택으로 거의 괴로운 줄을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이와같은 은혜은 도저히 갚을 길이 없으며 그러므로 내 목숨을 바쳐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 행동은 이렇게도 규율이 없고 내 힘은 이다지도 약하니 부끄럽고 두려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그 간의 순교자들의 편지가 모두 그러하듯이 우리는 순교자들의 편지를 읽을 때마다 특히 이문우 요한의 편지를 읽을 때 천주님의 은총의 기묘하고 역력한 효과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문우의 편지는 또한 성모 마리아께 대한 그의 신심이 얼마나 지극하였는지를 입증해 주고 있다. 특히(성모 마리아의 전구하심을 잊지말고 구하십시오. 그러면 청하는 것을 반드시 받게 될 것이요. 만명 중에 한 사람도 거절당하지 않을 것입니다)고 적고 있다.

그는 지상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비록 양어머니이었을지라도 친어머니처럼 똑같은 효성과 존경으로 대하였고 잡히기 전에 한 여 교우에게 어머니를 부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옥에 있은지 근 3개월 마침내 1840년 2월 1일 다른 두 동료와 함께 당고개에서 참수로 그의 순교를 완수하니 그 때 그의 나이 31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