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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명서 베드로      

 

 

 

 

 

 

    

 

성인 성 이명서 베드로 

영문명

 
축일 9월 20일  활동년도 1866.12.13 순교 
신분 농부  지역 한국 


성 이명서 (베드로 1820-1866)


일명 '재덕'으로도 불렸던 이명서 베드로는 충청도 출신으로 박해를 피해 여러 지방을 유랑하다가 병인박해가 일어나기 몇해 전부터 전주 소양 지방의 교우촌인 성지동에 정착하였다.

결혼하여 슬하에 많은 자녀를 둔 이명서는 열심한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한테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성품은 어질고 온순하였다.

잡히기 며칠 전에 조 베드로가 교우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는 며칠 후에 잡힐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피신하여야 합니다.
피신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수난을 자원한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고 하자 이 명서는 "사정이 그렇다면 여러분은 곧 피하십시오.
나는 지금 이런 병(심장병이라고도 하며 가슴앓이라고도 한다)이 있어 기동도 힘들지만 며칠 안되어 천주님께 불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내 병도 나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순교로써 지상에서의 모든 고난을 탈피하여 천상에서의 영광을 위해 필요한 에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막상 1866년 12월 5일 저녁 조 화서를 붙잡아 가지고 가다가 별안간 이명서의 집을 덮쳤을 때 그는 "너도 천주학장이지?"
하고 포졸들이 호통치는 바람에 당황하여 자신도 모르게 부인하는 말을 했다. 그러나 옆 사람들의 격려의 말에 특히 성질이 급한 조 화서 베드로의 말에 용기를 얻어 그 즉시 정신을 되찾고, "네 아까는 무서워서 그랬지만 사실 나는 천주교 신자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자 포졸들은 그의 온 집안을 수색하며 책들과 돈은 어디 두었느냐고 캐물었다. 이명서는 책은 가진 것이 없고 모든것은 귀로 들어서 배웠다고 말하자 포졸들은 참말인가 보려고 주의 기도문과 성모송을 외워보게 하였다. 그러자 이명서는 주의 기도문과 성모송을 외웠다. 그리고는 자기가 환자이기도 하거니와 처자들을 생각하여 생명만을 부지해 달라고 포졸들에게 애원하였다.

그랬더니 늙은 포졸 하나가 이명서 말을 듣고 동정심이 생겨 그를 놓아 주면서 다른 포졸들한테 들키지 않게 밤을 이용해 도망가라고 말해 주었다.

이명서는 그의 말만을 믿고 집에 그냥 머물러 있다가 다음날 아침 포졸들이 도착할 무렵 보따리를 어깨에 메고 산으로 피하였다.
이를 본 포졸들이 몸이 쇠약하다는 그의 말을 신용치 않게 되었고 그를 쫓아가 체포하여 다시 집으로 끌고와서 선생의 이름을 대라고 문초하였다.

이명서는 자기에게 선생이라고는 자기 부친밖에 없으며 책은 한권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포졸들은 그의 애원을 뿌리치고 끌고 나아가 조베드로와 조 요셉이 있는 어느 주막으로 데리고 갔다.

이때 관졸은 이명서가 환자이기 때문에 쉽게 배교하리라 생각하고 그 중 제일먼저 신문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들어맞지가 않았다. 그 후 이명서는 천주학을 하느냐고 묻는 원님에게 그렇다고 확답하며, "내 수십번을 죽는다 해도 천주교를 따를 것이오"하고 말하면서 배교를 단호히 거부하였다

그리고 다른 교우들을 대라고 하는 것을 거절함으로써 주리를트는 등 여러가지 혹독한 고문을 받았지만 이명서는 경탄할 정도로 용감하게 잘 이겨나갔다.

교우들이 감옥살이로 인해 몸이 쇠약해지고 거기다 여러번 걸쳐 잔인한 고문까지 당했지만 이들은 모든 것을 잘 견디어 내고 서로 격려하며 함께 기도를 드릴 뿐 아니라 기어이 배교를 거부함으로써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처형되는 날도 먼 길을 끌려가면서 모두가 한결같이 천국에 들어가게 됨을 기뻐하자 그 때 이명서는 "여러분들이 말하는 그대로 오늘 우리 모두는 치명을 마치면 곧장 천국에 들어 진복자들이 될것입니다. 이 행복을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라고 희열에 넘쳐 말하였다.

이러한 그의 얘기는 당시 주위에 있던 외교인들까지도 놀라게 하였던 것이다. 물론 외교인들은 한마디만 하면 살아날텐데도 거절하는 교우들의 확고부동한 신앙을 알아들을 리 없었다. 정해진 전주 숲정이 처형장소에 이르러 모든 절차가 끝난 후 46세된 이명서는 첫번째 칼에 목을 땅에 떨어뜨리며 숨을 거두었으니, 때는1866년 12월 13일이었다.

마음이 착하고 독실한 구교우로서 지상에서 하여야 할 일을 기쁨으로 끝마치니, 천주의 종인 이명서 베드로의 시체는 처형 삼일
후에 교우들이 용마루재에 안장하였다.
성인의 유해는 절두산 순교기념관에 안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