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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이매임 데레사     

 

 

 

 

 

 

    

 

성인 성녀 이매임 데레사 

영문명

 
축일 9월 20일  활동년도 1839.7.20 순교 
신분 부인  지역 한국 


성녀 이매임 (데레사 1887-1839)


이매임 데레사는 과천의 봉천 이씨집에서 제일 먼저 입교한 사람인 허계임의 시누이이며 이영희의 고모이다.
외인 시절에 결혼한 이 매임은 스무살에 과부가 되어 친정으로돌아왔다. 같은 동리의 한 여교우가 그를 불쌍히 여기어 전교하였다.

이매임은 자신이 입교할 뿐만 아니라 집안 식구들에게도 열심히 전교하였다. 그리하여 이영희(막달레나)의 어머니가 우선 입교하였고 또한 어머니는 딸들을 입교시키게 되었다. 이매임은 판공성사 때가 되면 올케 허계임과 함께 상경하여 성사를 보고서는 조카딸(이영희) 집에서 묶어 가곤 하였다.

여느 때처럼 기해년 봄에도 매임은 올케와 함께 서울에 와서 성사를 보고 잠시 조카딸의 집에 들렀다. 때마침 군난이 크게 일어났다.
이 때 조카딸 집에는 딴 여교우 1명과 5명이 같이 모여 있었다. 많은 교우들이 잡혀가 용감히 신앙을 고백했다. 특히 남명혁 (다미아노)와 이광헌(아우구스티노) 두 회장의 어린 자녀들이 혹형 가운데 보여준 용기와 불굴의 신앙은 이 용감한 6명의 부인들로 하여금 천주를 위해 그들의 생명을 바치려는 열망에 이르게하였다.

그들은 즉석에 자원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아직도 포졸들이 남아 파수를 보고 있는 남명혁 회장집으로 달려가 자수하였다.

이 때가 1839년 4월 11일 이었으며 이 바르바라는 나이가 어려서 자원의 무리에서 제외된 것 같으나 어쨌든 그도 붙잡혔을 것이 확실하다.
포졸들은 어리둥절하여 믿으려 들지 않고 도리어 증거물의 제시를 요구했다. 묵주를 꺼내 보이자 그들을 결박하여 먼저 포장의 집으로 끌고 갔다. 포장은 다음과 같이 물었다.

"너희들은 천주교 도리가 옳은 것이라고 믿느냐?"
"물론입니다. 만약 거기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의심을 가졌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아니할 것입니다."
"배교하고 천주교 책을 바쳐라."
"차라리 죽을지언저 배교는 못하겠습니다."

여기서 주리 4차례를 하여도 굴복하지 않으므로 포청으로 보냈다. 5일후 포장이 다시 불러 내어 "너희들이 당한 형벌과 옥중의 무서움이 너희들의 혼미함을 깨우치지 못하였을까?"
"저희들더러 배교하라고 권하시는 것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뿐입니다. 저희들이 자수를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함인데 그를 배반하라고 하신단 말씀입니까? 아니올시다 참된 교우는 천주를 위하여 살고 천주를 위하여 죽는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나라법이 저희들을 사형에 처한다면 즐겨 죽겠습니다. 그러나저희 교를 배반한다는 것은 절대로 안될 말입니다."

그들은 다시 전번과 같은 혹독한 형을 당하였다.
10일간의 구류끝에 형조로 이송되었다.
형조에서 이매임은 문초끝에 사형이 선고되었다. 마침내 1839년 7월 20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치명하니, 그의 나이 52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