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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이경이 아가타    

 

 

 

 

 

 

    

 

성인 성녀 이경이 아가타  

영문명

 
축일 9월 20일  활동년도 1840.1.31 순교 
신분 부인  지역 한국 


성녀 이경이 아가타(아가타. 1813-1840)


이경이 아가타는 시골에서 여러 해 이어 온 천주교인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결혼할 때까지도 모르고 고자에게 속아 출가하였으므로 친정으로 돌아와 지내다가 앵베르 주교에게 사정을 말씀드려 주교가 그 결혼을 풀어 주었다.

따라서 이경이는 친정에 남아 사는 길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를 일찍 여윈데다 유산도 없어진 뒤라 거처할 집이 없어서 어머니는 시골동생 집으로 내려가고 경이는 서울로 올라와 권 아가다의 모녀에게 의탁하게 되었다.

권 아가다 모녀와 이경이 아가다 세 사람이 서로 의지하며 독실히 수계하고 있을 때 돌연 기해년 7월 17일 한밤중에 포졸이 달려들어 모두 잡아 포청으로 끌고 갔다. 종사관이 기초 신문을 하더니 손 막달레나만을 포청에 가두고 두 아가다와 잡혀 온 여종은 따라 사관청에 가두는 것이었다.

이 때 유다스 김여상이 와서 같이 도망하자고 권 아가다를 감언으로 유인하였다. 그 후 포졸들이 와서 그녀들의 젊고 아름다운 용모에 매혹되어 그들을 유괴하려는 속셈에서 우선 도망하게 하였다. 이 사실이 국왕에까지 알려지자 임금은 엄한 교지로써 포장을 파면하고 파수하던 군졸 한 명은 사형에 처하고 두 명은 귀양을 보냈다. 또한 갇혀있는 교우들의 고문이 더욱 가혹해지고 감시가 삼엄해졌으며 감방의 문을 밤낮으로 잠그게 하였고 한편 달아난 사람을 사방으로 수색하고 추적하는 바람에 새로 교우 10여명이 잡혀 들어왔다.

감옥에 탈출한 이경이는 교우집을 찾아 피신하였는데 정 아가다는 그의 피신을 이렇게 증언하였다.
"우리집 부근 한 교우집에 피신하였으나 도무지 안전하지가 않아서 아버지께서 오막살이를 만들어 숨겨 주었다.

그러나 근처 양반이 오막살이 집을 보고 하인을 시켜 헐어 버리니 이경이는 하는 수 없이 다른 교우집으로 가서 벽장에 숨었으나 거기서 하루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결국 우리 집으로 와서 숨었다."

그 때 이경이의 마라이 "우리가 감옥에서 탈출한 것은 포졸 한명이 나를 유괴하려고 했기 때문"이라며, "네가 지금까지 영세하지 못한 것은 문답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답을 익히도록 힘쓰라. 그리고 영세하게 되면 우리와 같이 아가다란 세례명을 택하라."고 덧붙였다.

다음날 밤에 포졸들이 갑자기 습격해 와서 이경이와 권 아가다를 체포하고 식구들을 모두 붙잡아 가려 했으나 이경이는 "그들에겐 조그마한 잘못도 없습니다." 하고 간청하므로 두 아가다만 잡았다. 그러나 이튿날 다시 와서 우리 아버지를 잡았다.

두 아가다가 잡힌 것은 같이 달아났던 여종이 그들의 은신처를 밀고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망쳤던 죄로 포청에서의 문초와 고문이 한층 가혹했지만 이경이는 종시 굴복하지 않았다. 문초에 대해선 권진이 아가다와 동일하니 전술한 바 있어 생략한다.

결국 형소로 이동되어 사형언도를 받고 옥고 6개월만인 1840년 1월 31일 당고개에서 참수로써 동정과 순교의 이중 월계관을 차지하니 그의 나이 27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