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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이 가타리나    

 

 

 

 

 

 

    

 

성인 성녀 이 가타리나 

영문명

 
축일 9월 20일  활동년도 1839.9.? 
신분 순교과부  지역 한국 


성녀 이 가타리나(가타리나  1782-1839)


103위 중에서 이름 없는 분으로 일곱 성녀가 있다. 그러나 무명으로 남은 데는 까닭이 있다. 그 중 누군가는 이름이 있었는데 이가타리나와 조 막달레나의 경우 어머니와 딸 사이이다.

전기한 바와 같이 서소문밖 당고개에서 참수치명되어 피를 흘리며 찬란하게 그들의 순교를 완성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록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찬란하게 나타나지 않았으나, 그들 못지 않게 용감하고 항구하게 신앙을 증거한 나머지 감옥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는 증거자들도 여러 분 있었다.

그들중에 어머니와 딸이 함께 붙잡혀 같은 옥에 갇혔다가 거의 같은 날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었다는 것이 이 가타리나와 그의 딸 조 막달레나의 간단한 경력이다. 이것만으로도 교우의 영광은 충분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생애와 그들이 받은 형벌은 이 세상에서 몇해동안을 가난하고 비천하게  살았으나 천주님께서는 천국에서 불멸의 부와 영광을 그들에게 주신 것이다.

이 모녀의 생애에 관해서는 오늘날 <기해일기>밖에 전해지는 기록이 없으니 애석한 일이다. 지방에서 태어난 이 가타리나는 부모가 교우이기는 하였으나 도리에 밝지 못했던 탓으로 그가 열네 살 때 외교인 조씨에게 시집가야 했다.

그러나 그 후 남편을 권면하여 죽을 때에는 그에게 대세를 주어서 선종하게 하였다. 그리고 삼남매를 낳아 모두 잘 교육시키어 천주님을 사랑하게 하였다.  이 삼남매중에서 맏딸인 조 막달레나가 제일 열심이었다.

외인 친척들이 천주교 믿는 것을 매우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막달레나는 어머니곁에서 부지런히 경문을 배우고 7,8세가 되어 외가로 온 후에도 더욱 부지런히 교리서를 읽으며 교리설명을 들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기도를 드리고 신공을 바쳤다. 그렇게 하기를 하루도 빠진 적이 없을 만큼 대단히 열심하였다고 한다.
이 가타리나는 딸이 장성함에 어떤 교우에게 시집 보내려 했으나, 딸은 그것을 거절하고 어머니에게 동정지킬 원의가 있음을 토설하였다. 이 가타리나는 딸의 소원을 이해할 만큼 열심하기는 했으나 외교인들이 이것을 이상히 여기고 의심할 것고 또 자기가 죽을 경우 딸을 아무 의지할 곳도 가족도 없이 버려두는 것이 염려가 되어 그 연유를 딸 막달레나에게 설명하여 주었으나 딸을 설복시키지는 못하였다.

딸은 동정을 지키기 위해 가출하고 두 자녀를 데리고 살던 가타리나는 딸 막달레나가 30세가 넘어 집에 돌아오자 박해를 피하기 위해 딸과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하여 남의 집에 붙어 살고 있을 때 다시 큰 박해가(1839년 7월 상순)일어나 두 모녀는 체포되어 옥에 갇히었다.

가타리나는 모진 고문과 주리를 당하고 3개월의 모진 옥중 고통으로 염병에 걸려 1839년 9월 하순 옥중선종하니, 그 때 나이 57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