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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유대철 베드로   

 

 

 

 

 

 

    

 

성인 성 유대철 베드로 

영문명

 
축일 9월 20일  활동년도 1839.10.31 순교 
신분 소년  지역 한국 


성 유대철(베드로 1826-1839)

유대철 베드로는 역관 유진길의 장남이다. 이 집안은 이상하게도 부자도 열심히 천주교를 믿는 반면에 모녀는 믿기는 커녕 이를 반대하여 가정에 불화가 그칠 날이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끝내 외교에 고집하여 자기 아들이 기도하는 것을 방해하고 조상숭배에 다시 끌어넣으려고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대철은 이런 처지에 있었던 것이다. 모든 신심의 의무를 충실히 행하는 유대철로는 끊임없이 어머니와 누나의 방해를 받았고, 자주 견디기 어려운 집안의 박해를 받았다. 그 여자들은 말하는 것이었다.
"어째서 너는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일을 고집하느냐?"

대철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복종하겠으나 하늘의 임금만물의 주인의 법을 따르는 것이 옳지 않느냐고 온화하고 상냥하게 대답하였다.
그뿐 아니라 어린아이의 입에서 감명을 주는 이 말과 함께 어머니와 집안사람들을 어루만지는 다정한 말을 잊지 않곤 하였다.

천주앞에서 어머니의 눈이 어두움을 한탄하면서도 어머니께 대하여는 언제나 지극한 효성을 보여주었다.
박해가 발발하자 그는 마음속에 순교하고자 하는 열렬한 욕망이생겨남을 느끼었다.

증거자들이 보여주는 꿋꿋한 마음의 휼륭한 본보기는 그의 마음에 불을 질러 놓았다. 당시 아버지도 옥에 갇혀 있었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체포된 후 천주께 대한 열광적인 사랑에 끌려 1839년 8월 관헌들에게 자수하였다.

재판관은 그의 집안 내력을 자세히 물어보고 교우의 자식임을 알게 되자 옥에 가두게 하였다. 대철은 곧 법정에 끌려나갔다.

그리고 그에게 한마디만이라도 배교한다는 말을 하게 하려고 어르고 엄포하고 고문하는 등 천만가지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옥사장이들은 법률에도 성문으로 나타나지 않고 오직 형리의 무자비한 상상력으로만 생각해낼 수 있는 혹형을 대철에게 가햐였다.
몸이 갈기갈기 찢기고 사방에서 흘러내리는 자기피를 보는데도 이용감한 어린이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관속들은 옥중에서 자주 다른 형벌을 가하였다.
하루는 어떤 포졸이 구리로 된 담뱃대통으로 그의 허벅지를 들이박아 살점을 한 점 떼어내면서 소리쳤다.
"이래도 천주교를 버리지 않겠느냐?"
"그러문요. 이것쯤으로 배교할 줄 아세요?" 그러니까 포졸들은 벌겋게된 숯덩어리를 집어가지고 입을 벌리라고 하였다. 대철이,]
"자요." 하고 입을 크게 벌리니 포졸들은 놀라 물러나고 말았다.

다른 교우들이 그에게 "너는 아마 많은 괴로움을 당한 줄로 생각하겠지만 큰 형벌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하고 말했다. 대철은 "저도 알아요. 이건 쌀 한 말에 대해서 한 알같은 것이요"하고 대답하였다.
그 후 고문을 다한 끝에 까무러친 것을 데려와서 다른 죄수들이 정신을 들게 하느라고 허둥지둥할 때 그가 말한 첫마디는 "너무수고를 하지 마시오. 이런 것으로 해서 죽지는 않을 거예요"하는말에, 형리들이 놀라는 것 같았다. 대철이 자기몸에서 헤어져 매달려 있는 살점을 떼어서 재판관들 앞에 던지며 웃으니, 관원들은 모두 치를 떨었다.

감옥에서는 그 어린 나이에 사도의 직분을 행하여 연약한 자들 으리 위로하며 배교한 자를 회개케 하니 한번은 어떤 자에게 "당신은 회장이고 어른이면 나는 어린아이입니다. 당신이 나를 보고 잘 참아받으라고 권면해야 옳은 터인데 도리어 내가 어른인 당신을 권면하니 부끄럽지 않습니까? 빨리 회개하여 예수를 위해 죽으십시오." 하였다.

겨우 열세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이와 같은 혹형을 가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혹은 너무 과장하는 것이나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고문과 이 용맹을 목격한 증인은 열명이 넘으며 그들 증인은 천주님앞에 맹세를 한 후에 그 사실을 단언한 것이니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오직 이와같이 훌륭한 용기앞에 머리를 깊이 숙이는 것뿐이다.

여기에서 당시의 박해상황을 살펴보면,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햐 목숨을 바칩니다. 아직 배로 떠나지 않았으면 포교 손계창에게 자수하십시오."
이미 자수한 앵베르 주교는 남은 두 신부마저 자수한다면 반드시 박해가 끝날 줄로 확신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두 신부에게 스스로 나타날 것을 분부했던 것이다. 그러나 주교의 이러한 희망과 기대와는 달리 세 선교사의 순교후에도 박해는 여전히 계속되었을 뿐더러 공교롭게도 이 무렵 조정의 세도싸움에서 이지연이 물러나고 대신 조인영이 우의정이 되어 정권을 장악하게 되니 박해는 도리어 더욱 치열해졌다.

풍양 조씨의 중심인물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에 대결했던 조인영은 천주교인에 대해서도 아주 무자비하고 잔인했다고 한다. 이제 와서 보니 교인들에게는 구관이 된 이지연이 도리어 명관으로생각될 정도였다.

교우들에게 교수형이 집행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고 조인영이 그것을 지령했을 것이라고 한다.
수많은 공식 사형집행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가 어려워졌던 것일까 아니면 너무 많은 처형으로 국민들에게 끼칠 영향을 두려워했던 때문일까? 어쨌든 이때부터 교수형이 교우들에게 자주 적용되게 되었고 음력 9월 25일(10월 30일) 두 순교자에게 처음으로 이 형이 집행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유대철이었다.

유년시대를 겨우 벗어난 이 땅의 작은 천사가 벌써 구세주가 마신 술잔을 마시며 정확한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두려움없이 증거하는 이 광경이 하늘의 천사들의 눈에 어떻게 비치었겠는가! 아무리 가혹한 형벌을 가해 보았지만 시종일관 굴복하지도 않고 죽지도 아니하였다.

10여세의 미성년을 형장으로 끌고가서 공공연하게 목을 벨 수는 없었다. 법이 허락하지 않아서만이 아니라 이로 인해 민중에게서 일어날 결과가 더욱 무서웠기 때문이다.

때마침 교우들에게 교수형을 실시하라는 지령이 내리어 1839년 10우러 31일 형리가 옥안으로 들어와 상처투성이가 된 그 가련한 작은 몸뚱이를 움켜잡고 목에 노끈을 둘러 감아 이 영웅적 소년을 졸라 죽였다.
이 때에 대철의 나이 13세였다.

참으로 이렇듯 위대하고 이렇듯 천진함을 대하고는 누구나 갈바리아에 올라가 신인이 괴로움을 당하시고 죽으시는 것을 볼 필요를 느끼며, 순교자는 천국을 상으로 받을 것이요. 또 이 천국은 그와 같은 휼륭한 사람을 백배로 갚아주기에 넉넉한 영원한 행복과 영광이라는 것을 거듭 말할 필요를 느끼겠는가.

유대철은 조선의 가장 휼륭한 순교자중의 하나이다.
그의 순교사기는 순교자 성 베난시오의 일을 생각하게 하여 주며 그의 용맹함과 고난받은 것 역시 비슷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고금과 동서를 막론하고 당신의 기묘한 은총으로 세상을 비추시며 미천한 어린아이들로써 불패의 용사를 만드시는 천주님께 불멸의 영광이 있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