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원귀임(마리아 1817-1839)
원귀임 마리아는 1817년에 고양군 용머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결식하는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으로 방황하였다.
그러다가 아홉살 때에 아버지마저 여의고 고아가 되었다. 고아가 된 원귀임은 열심한 교우인 고모뻘 되는 원 루시아로부터 요리
문답과 경문을 배우는 한편 원 루시아의 집이 수놓아 생활하는 집이었기 때문에 귀임도 수놓은 일을 본업으로 삼았다.
양순한 성품에 항상 신심이 평화스러웠으며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매사에 신중하고 성숙한 태도를 보여서 모든 이를 탄복케 했다.
15세에 신부로부터 세를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혼인 말이났으나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거절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머리를 올려 시집간 여자모양으로 쪽을 지었다.
기해년에 군난이 크게 일어나 4월 7일 밤중에 포졸들이 원 루시아의 집을 포위했을 때 귀임은 요행히 빠져나와 성문 밖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고발로 포졸들에게 잡히게 되었다. 이 때 세 사람이 잡혔다고 한다. 처음에 귀임은 당황한 나머지 정신나간 사람 모습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주명 아닌 것이 없을 뿐더러 이것도 천주께서 주시는 은혜일 것이라는 생각이 곧 귀임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포청에서 우선 종사관이 대략 문초한 다음 포장이 직접 귀임을 불러서 다음과 같이 심문하였다.
"네가 천주교인이냐?"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저는 천주교인입니다."
"배교하라. 그러면 살려주마."
"저는 천주를 공경하고 제 영혼을 구하고자 합니다. 제 결심은 단단하여서 죽어야만 한다면 죽겠습니다. 그저 무엇보다도 제 영혼을 구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배교하면 영혼을 잃게 됩니다."
귀임은 주리를 틀리고 곤장을 맞고 여러 번 문초를 당하고 뼈가 여러 개 어그러졌으나 조금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언제나 정신을 잃지 않으며 조용히 또 품위있게 대답했다.
이 용감한 원귀임은 그 뒤 형조로 옮겨졌고, 두세 주일 지난 후에 법정에 끌려나가 포도청에서와 같은 문초를 당하였다.
형조에서는 귀임에게서 한마디 배교한다는 말을 얻어내고자 친절하게 달래기도 하고 부귀영화로 유혹하다 못하여 마침내는 가혹한 고문으로 위협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으나 도리어 그의
순교의 뜻을 굳힐 뿐이었다. 이밖에도 귀임은 감옥에서 굶주림과
갈등과 열병 등으로 고초를 겪어야 했으나 그의 마음은 항상 안온을 잃지 않았다.
드디어 5개월의 구류 끝에 원귀임은 그의 피로써 직접 그리스도와 혼인계약에 수결함으로써 신랑을 마중나가는 지혜로운 동정녀
측에 끼는 영광을 차지하였다. 때는 1839년 7월 20일 형장은 서소문 밖 네거리이며 그의 나이는 2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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