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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우술임 수산나    

 

 

 

 

 

 

    

 

성인 성녀 우술임 수산나 

영문명

 
축일 9월 20일  활동년도 1846.9.20 순교 
신분 과부  지역 한국 


성녀 우술임(수산나 1802-1846)


우술임 수산나는 양주의 양반 외교인의 딸로 태어났다. 나이 열 다섯살때에 인천 어떤 교우에게 출가하여 남편의 권고로 입교하기 에 이르렀다. 처음 1828년에 체포되어 관장앞에 끌려가 사형선고 를 받을 뻔하였다. 그러나 임신한 지 여러 달이었으므로 관장은 고문 하고 옥살이를 2개월 시킨 뒤에 놓아 보냈는데 그 뒤부터 늘 고문의 후유증을 앓았다.

남편을 여의고 과부가 되어 1841년에 서울로 이시를 하였는데 거기서 그의 덕행은 뭇 사람의 눈길을 모았다. 그는 여러 신자집 에서 하인 노릇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면 기도와 겸손과 인내에 전념하여 가난과 좋지 못한 대우를 기쁘게 참아받았다. 그가 괴로와 하고 아까와하는 것은 다만 순교의 기회를 놓친 것 뿐이었다.

이렇게 남의 집 사환으로 천한 생활을 하며 전전하던 중 이아가 다의 초청을 받았다. 두 과부는 함께 벌이를 하며 열심히 수계하 였고 우술임 수산나는 묵상을 부지런히 하였다.

1846년 봄 김신부가 잡히게 되자 현석문 회장은 김신부집에 남아 있던 여교우들을 새 집으로 옮기는 도중 일단 이간난 아가다 집에 피신시키었다.

이 아가다도 새 집으로 가 있었고 우수산나만이 혼자 집에 남아있었다.
포졸들이 여교우들이 피신할 때 가마를 메고 갔던 교군들을 앞 세우고, 곧장 이 아가다 집을 습격하고 새 집을 대라고 협박하는 바람에 우술임은 놀라고 겁이 나서 결국 포졸들을 현석문 회장집 으로 인도하였다. 현회장, 이 아가다 모두 6명이 1846년 7월 10일 에 붙잡혀 좌포도청에 갇혔다.

한 때 옥중에서는 우술임 수산나가 현석문 회장집을 가리켜줌으로써 모두가 잡히게 되었다고 하여 이 아가다와 우 수산나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으나 다행히 현석문과 김임이 데레사의 권고로 화해 되었다.

우술임은 옥중에서 인내와 애덕과 겸손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치도곤, 대형주리 등 혹형을 당하였는데, 승정원일기에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문초하였으나 배교한다는 소리는 한마디도 그에게서
들을 수가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9월 19일 군문효수하여 민중을 깨우칠 것이고 나머지 죄수도 포 청에 분부하여 경중을 따라 처리하는 최종판결이 내림에 따라 현석문 회장은 그날로 군문효수에 처해졌고 나머지 우술임 외 3명의 여교우도 이미 곤장과 혹형에 거의 죽게 된 것을 옥에서 교살해 버렸다. 때에 우술임의 나이 44세였다.

1846년 9월 20일은 일곱 순교자의 영광의 날이었다. 이들은 모두 교수되었거나 혹은 장하에 숨을 거두었다. 이것은 법정 증인들이 명백하게 확인한 바이며 승정원 일기도 증언하는 바이나 혹자 는 후자를 더 확실한 증거가 된다고 인정하리라, 이제 그 기록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한이형, 이녀간난, 우녀술임, 김녀임이, 정녀철염은 여러차례 주리를 틀고 여러가지 문초를 하였으나, 목석과 같이 완악하여 배교하
는 말을 한마디도 말할 수가 없는지라. 그러므로 매로써 쳐죽인 줄로 감히 아뢰나이다.> 이런 종류의 죽음에 대하여 뮈텔 주교가 지적한 바는 매우 흥미 있는 것이다.

여기에 기록된 것과 순교자 중 몇 명은 교살되었다는 말과는 모순되는 것이 아니니 매로써 죽이기로 선고한 죄수는 지극히 가혹 한 매질을 하였지만 이내 죽지 아니하면 목을 졸라 죽여버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