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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권희 바르바라 

 

 

 

 

 

 

    

 

성녀 권희(바르바라, 1793-1839)


권 희 바르바라는 이 광헌의 아내요, 이광열의 형수가 되며 이 아가타의 어머니가 된다. 본래 외교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23세에 남편과 같이 천주교에 입교했다. 그의 남편이 서울에 거쳐하면서 회장으로서 주교와 신부를 보필하고 있었으므로 내조자로서의 그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앵베르 주교와 전교 신부들에게 숙소를 제공했으며, 교우들이 그이 집에서 고해성사를 타당하게 예비하도록 여러 교우들을 힘써 인도하고 가르쳤다. 그리고 미사에 참례케 하였다.

1839년 4월 7일(음력 2월25일) 한밤중에 포졸들이 습격해와 체포되었다. 체포된 가족 중에느 17세의 아가타와 12세의 다미아노라는 어린 자녀가 끼어있었다. 그는 수많은 형벌을 당하였다. 특히 그의 마음을 가장 괴롭게한 것은 자기와 같이 붙잡혀 들어와서 혹독한 곤장을 여러 차례 맞고 주림과 목마름과 추위로 가혹한 시련을 당하는 열일곱된 이 아가타와 12세된 다미아노의 고통이었다. 어린 것들이 목마름과 열병의 옥고를 겪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들어야 했던 어머니(권 바르바라)된 마음으로서 얼마나 마음을 태웠으리오마는 그러나 천주를 만유위에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굽히지는 못하였다. 권 바르바라는 너무나도 무례한 언동을 한다고 포교배를 꾸짖은 일이 있었다. 이 때 그의 남편의 경고를듣고 크게 깨달은 바 있어 그 후로는 형벌과 욕을 많이 받았으나 다 감수 인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권 바르바라 일가족은 모두 같은 날 체포되었다. 그리고 같은 날에 사형선교를 받았다. 또한 같은 날에 같이 순교하기를 간절히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우리나라 법에 아주 가까운 친척을 한날에 죽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부득히 부부 중 한명의 사형집행이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권 바르바라는 남편이 순교한 후 여러 차례의 곤장과 주리를틀렸으나 끝내 관헌에게 굴복하지 않고 남편이 순교한 뒤 4개월후인 1839년 9월 3일 서소문 밖에서 46세의 나이로 참수치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