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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권진이 아가다

 

 

 

 

 

 

    

 

성녀 권진이(아가다 1819-1840)


권진이 아가다는 죽을 무렵에 영세한 권진사와 순교한 한영이 막달레나의 따로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든 재질을 타고  난 이상적 여성의 모델이었다.  특히 남달리 뛰어난 그의 미모는 대단하였다고 한다.

나이 13세여 결혼하였으나 남편이 너무 가난해서 데려가지 못하고 있던 중 중국인 유신부가 조선에 왔을 때 권진이는 그의 초소에 살림꾼으로 들어갔는데 진이가 영리하고 온화한 여자였으므로  신부를 매우 귀여워하였다.

뿐만 아니라 진이가 동정 지킬 의향이 있음을 말하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에 한 혼인을 취소시키기까지 하였다. 이것이 위험한 길로 들어가는 첫 걸음이었으니, 슬프다, 얼마 아니하여 그것이 너무나 명백히 증명되었다.

여러 달 동안 진이는 그의 단정치 못한 행동으로 크게 사람들을 슬프게 하였다.
그러나 모방 신부의 권면에 감동하여 용기를 내어 불의 관계를 끊어 버렸으니, 꺼지지 아니하였던 그의 신앙이 그 관계의 죄스러움
을 밝혀 깨닫게 하였던 것이다. 마치 한국의 막달레나 성녀라고 일컫을 수 있을 것이다.

진이는 친정 어머니에게 돌아와 그때부터 그는 열절한 보속과 열렬한 기도속에 생활하면서 전에 자기행동으로 말미암아 결려 넘어졌던 이들을 도리어 덕의 길로 권유하였던 것이다. 자기 죄를 기워갚고 천주님께 그 죄의 사함을 얻기 위하여 진이는 순교하기를 절원하였다.

이 무렵 의지할 데 없는 이경이(아가다)가 찾아와서 권진이의 집에 붙어 지내게 되었다.
권진이의 모녀와 이 아가다 세사람이 의지하며 독실히 수계하고 있을 때 기해년 7월 17일 한밤중에 진이 모녀와 이 아가다, 그리고 여교우인 동네사람이 잡혀갔는데, 한영이만 가두고 관원과 유다스 김여상 등 세 여자는 도망시키었다.

계집 종은 시골로 내려보내고 권진이와 이경이는 서울을 한 초라한 교우집에 잠복해 있었다. 그런데 이 계집 종이 먼저 잡혀서 저들이 잠복하고 있는 곳을 알려주었으므로 포졸들이 붙잡아다 우선 포청으로 압송하였다.

그러나 형벌을 수없이 받았어도 이들의 신앙은 끝끝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형조로 끌려가 다리에 모진 매를 맞았다. 권진이는 재판관에게 "나는 교우요. 죽는 날까지 교우로 있겠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진이는 그보다 한달가량 앞서 간 그의 어머니(한영이 막달레나)와 옥중에서 최후의 이야기를 하였다.

우리는 발길을 멈추고 자기의 신앙을 위하여 같은 옥에 갇혀,같은 투쟁을 겪고, 같은 용맹을 발휘한 뒤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피를 흘리러 가기에 앞서 마지막 사랑의 말을 주고받는 이 어머니와 딸을 오랫동안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다시 만날 천국을 꿈꾸며 얼마나 정다운 하직을 서로 나 나었을 것인가?
형조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권진이는 죽을 준비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는 열심으로 죽음을 준비하였는데 그의 기쁨과 천주성의에 순종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남겨진 추억가운데서 가장 감격적인 것몇가지를 적어보자.

권진이는 어떤 교우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말은 열정이 넘쳐흐르며 참으로 초자연적인 순종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 편지에 대하여는 이것밖에 알려진 것이 없으나 이와 같은 간략한 말만 가지고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는 휠씬 더 흥미 깊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진이는 자기 죄를 생각하고 겸손하는 것이었을까? 회개할 용기를 주시고 죄를 기워갚을 은총을 내려주심을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이었을까? 하여간 무한한 용서를 받은 이 가련한 여자는 향유와 눈물이상의 것을 예수께 바치게 된 것이다. 드디어 형장인 당고개에서 1840년 1월 31일 참수치명하니 그의 나이 21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