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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박아기 안나    

 

 

 

 

 

 

    

 

성인 성녀 박아기 안나 

영문명

 
축일 9월 20일  활동년도 1839.5.24 순교 
신분 부인  지역 한국 


성녀 박아기(안 나 1782-1839)

박아기 안나는 그의 외손녀 서수산나가 증언한 바에 의하면 한강 기슭 한 작은 촌락의 교우집안에서 태어나 어머니와 같이 천주 교를 봉행하고 있었다.

그는 기억력이 둔하여 요리문답과 경문을 배우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천주를 내가 워하는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마음껏 사랑하기로 힘쓰겠다"고 말하며 스스로 위로하였다. 비록 교리에는 밝지 못했을지라도 신덕이 굳었다.

열 여덟살에 교우 태문행에게 시집가서 2남 3녀를 낳아 자녀들을 매우 열심으로 양육하였다. 박아기는 집이 가난한 편은 아니어 지만 세상 사물을 탐내는 마음이 적었고 오주 예수의 수난에 대하여 특별한 신심을 가지고 있어 구세주의 오상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곤 했다.

박해가 일어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 그의 눈은 빛나고 순교하기를 열렬히 원하는 빛이 얼굴에 나타났다.
기해년 3월 중순에 남편 태문행의 장남 태응천과 함께 잡혔다.
남편과 장남은 곧 배교하여 석방되었으나 박아기는 관원이 백방으로 꼬이고 달랬음에도 불구하고 굳게 마음을 먹고 굽힐 줄을 몰랐다.

박아기는 다리뼈가 허옇게 드러나고 살에 커다란 구멍이 나도록 혹독하게 맞았다고 한다.
이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형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배교한 그이 남편과 아들들은 매일같이 찾아와서 한마디만 하면 풀려나오게되니 그리하라고 조르며 집안의 참혹한 형편과 죽어가는 늙은 어머니의 고통이며 엄마를 찾는 어린 것들의 가련한 정경을 눈앞에 정경을 눈앞에 그려 보았다.

그러나 그는 이 기막힌 유혹을 용감히 대적하여 나갈 수가 있었다. 그뿐 아니라 이와 같은 권고를 하는 여러 벗들의 나약함을 책하기까지 하였다.
"아내 며칠 더 살아보려고 영원한 죽음을 당할 위험을 무릎쓰란 말이요? 나보고 배교하라고 권하기보다는 끝까지 함구하라고 격려하여야 되지 않겠어요? 당신들이야말로 어서 천주께 회두하시오. 그리고 내 행복을 부러워하시오."

포장은 그에게 말하였다. "네 남편과 아들은 옥에서 풀려 나가 집으로 돌아갔다. 너도 한마디만 하면 이런 은전을 입을 수가 있어 그런데 집안식구들이 그렇게 조르는데도 너는 도무지 마음을 굽히지 않으니 네 마음은 쇳덩어리같이 인정도 도무지 없구나. 그래 삶이란 것이 그다지도 나쁜 것이란 말이냐?"
"제 남편과 아들이 배교한 것이 제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는 신앙을 보존하고 신앙을 위하여 죽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박아기는 혹형에도 무릎을 꿇고 신공바치기를 그치지 않았다.

드디어 1839년 5월 24일 옥고생활 3개월만에 서소문밖에서 참수 치명하니 그의 나이 57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