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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김업이 막달레나    

 

 

 

 

 

 

    

 

성녀 김업이(막달레나 1773-1839)

기술한 바와 같이 기해년에 박해가 발발하자 최초의 처형은 이해 5월 24일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집행되었는데 이 때 위주치명한 이는 모두 아홉분으로서 남자가 3명 나머지 6명은 여교우였다.

그 중 한분이 김업이 막달레나다. 그는 이미 4년전에 잡히어 무려 4년동안 옥에서 고초를 받으셨다는 점에서 특별히 생각나는 분이시다. 김 업이 막달레나는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아버지를 여읜 후 성질이 괴팍한 어머니밑에서 자랐다. 비록 좋은 교육을 받지는못했지만 어려서부터 열심히 믿었고 덕을 숭상하며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반대로 말미암아 교우에게 출가하게 되었다.중년에 이르러 남편과 자녀들을 모두 여의게 되자 친정으로 돌아와 늙으신 어머니와 함께 문밖 '애고개'로 이사하여 살면서 망건을만드는 일로 간신히 생계를 이어 나갔다.

어머니의 괴팍한 성질 때문에 크게 고통을 받았으나 항상 양순하고 인내하는 마음으로 어머니르 도왔다. 당신을 섬기는 자들로 하여금 단련받기를 원하시는 천주께서는 그 성질이 괴팍한 어머니가오래 살도록 허락하심으로써 김없이 막달레나가 많은 시련과 인내의 덕을 쌓을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어머니에 대한 김업이 막달레나의 효심이 너무나 지극하여 순명하는 그의 표양이 사람마다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도리에도 밝아서 여러 외인들을 가르쳐 입교시키었다. 외인자녀들을 위하여 유아위험대세를 주는 선행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선행중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피를 흘리시기를 항상 원하였다. 이 거룩한 원의가 실현되고 자기 선행의 상을 받을 때가 오려고 1836년 10월에 체포되어 포청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가혹한심문을 당했다.
그는 동료 교우 한아기 바르바라가 곤장을 맞는 동안 판관까지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천주십계도리를 설명하였고 복음의 진리를 설교하였다.
여러 번 중한 형벌을 받았지만 용감히 감당해 냈으며 한치도 굽힌 일이 없었다.
드디어 형조로 이송되어 사형이 선고되어 4년 옥고생활 끝에1839년 5월 24일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참수치명하니, 그의 나의66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