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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김성임 마르타   

 

 

 

 

 

 

    

 

성녀 김성임(마르타 1789-1839)


김성임 마르타는 서울 근처 어느 촌락의 외교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김성임 마르타는 이영희 막달레나 집안의 네식구와 함께 자진하여 포졸들에게 잡힌 사림이다.

기해일기를 보면 김 마르타는 부평 댁이라고 불렸다고 하는데 부평사람과 결혼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마르타는 남편과의 사이가 좋지 않아 서울로 숨어 들어가 점장이 소경 이씨에게 개가하였다.

개가한 집안에 원래 천주교를 아는 사람이 있어서 김 마르타는 그에게서 성교얘기를 듣고 믿게 되었다. 소경 남편을 여읜 후 김마르타는 이단에 협조한 것을 통회하고, 죽은 소경 남편의 재산이 다소 남아 있었지만 집을 떠나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원으로 아주 가난뱅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의식을 돌보지 않고 이집 저집을 전전하면서 교우집을 애긍으로 살아 나갔는데 김 마르타는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여러가지로 교우들의 일을 거들어 주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의 생활은 퍽 괴로와서 어떤 때에는 자기가 애긍받는 것 때문에 마음 쓰라림을 뼈저리게 느끼곤 했다.

그러나 언제든지 온화하고 천주께 의탁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 김 마르타는 떠돌이 신세로 지내다가 이영희 막달레나 집의 방 한간을 얻게 되었다. 그후 기해년 박해가 일어나자 이 막달레나와 한가지로 자수하기로 결심하였다.

포청에 나타난 김성임 마르타는 다섯 차례나 주리형을 받아 팔다리를 쓰지 못하였지만 형상이 태연하고 대답이 한결 같았다. 김마르타는 결국 형조로 이송되었고 거기서 또 한번 매와 문초를 받은 다음 사형선고를 받았다. 1839년 7월 20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치명하니, 그이 나이 50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