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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홍금주 페르페투아  

 

 

 

 

 

 

    

 

성인 성녀 홍금주 페르페투아 

영문명

 
축일 9월 20일  활동년도 1839.9.22 순교 
신분 과부  지역 한국 


성녀 홍금주(페르페투아 1803-1839)

홍금주 페르페투아는 서울문밖 사람이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10여세에 다소 교리는 알았으나, 15세에 외교인에게 출가하자 신앙이 냉담해져 외교인과 다름없이 지냈다.

그는 성품이 굳세고 활달할 뿐더러 도량이 넓어 외양에 남자같은 기상이 있었다.

젊어서 남편과 사별하게 되니 집도 재산도 없는지라 어린 자식 박 호랑 하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교우집에 돌아다니며 의탁하고 생계를 이어가면서, 한편으로는 교리도 익히고 조그마한 일에 봉사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그러다가 의지하던 아들 박호랑마저 잃게 된 후로는 미나리꼴에 사는 최 필립보의 행랑에 방 한간을 얻어 들었다. 여기서 성사를 받고 열심히 묵상할 때와 첨례신공할 때면 언제나 눈물을 흘리는 고로 같이 있던 사람들도 감격하여 신심을 더하게 되는 이들이 많았다. 유 바르바라의 증언에 의하면, 하루는 홍페르페투아가 "내 소원은 붉은 옷을 입는 것이다"라는 말에 "그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순교가 바로 나의 소원이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돌연 기해년에 박해가 일어나 그의 소원이 성취될 날이 다가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피신하도록 여러번 권했으나 종시 듣지 않았다. 결국 1839년 4월 하순경에 포졸들이 최필립보의 집에 침입하여 그의 동생 야고보와 아내를 잡아갈 때 홍금주도 함께 잡잡혀갔다.

금주는 배교를 거부하고 교우들을 대라는 명령을 듣지 않았으므로 주리를 틀렸다. 그러나 신음도 하지 않고 이 혹형을 잘 견디었다. 또 하루는 포졸들이 저희들 멋대로 그를 특별한 옥으로 끌고가서 옷을 벗겨 대들보에 매달아놓고 능욕하고 비소하며 북초대로 무수히 때려보았으나 그는 태연자약하여 얼굴빛도 변하지 않았다.  끝내 굴복하지 않았으므로 사흘이 지난 후 형조로 이송되었다.

형조에서도 세번이나 다리에 곤장을 맞았다. 그러나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사형선고를 받고 옥으로 끌려가 집행때까지 갇혀 있어야 했다.

삼복더위가 겹쳐 4,5차례나 염병을 앓아야 했다. 다행이 병이 낫자, 홍금주는 옥중 교우들의 상처의 고름을 씻어 주기도 하고, 이도 잡아주며 온갖 시중을 들었다. 이처럼 남돌보기를 자기 몸보다 더하는 홍페르페투아를 옥중의 교우들은 친누이처럼 신뢰하게 되었다.

옥에 있은 지 6개월만인 1839년 9월 26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치명하니 그의 나이는 36세였다.